詩
아무것도 아닌 날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을 벌여야
장미가
겨우 꽃만 피고 있지 않게 됩니다
장미가 붉은 입술을 열어
담장 너머로 낮은말을 걸면
길가에 엎드린 무거운 돌들도
비로소 몸을 뒤척이며 구르기 시작합니다
꽃잎 하나가 허공에 문장을 적을 때
딱딱한 침묵들은 금이 가고
먼지 낀 관성(慣性)들이
서로의 옆구리를 치며 깨어나는 소리
작은 소란이
장미의 가시를 깨우고
그 가시가 찌른 공기가
돌들의 잠을 흔들어 깨울 때
세계는 비로소
아무것도 아닌 날들의 목록을 지우고
피어 있는 것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