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유리 심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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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중심이 무너졌다.
짐승처럼 길어지는 밤의 틈새로
의식은 낱개로 부서진다.
날카로운 파편 위로
빗속을 헤매던 노루의 눈빛이 스며와 박힌다.
내 망막 안쪽에서 번지는 타인의 추위.
몸이 세상을 억지로 색칠하고
마음이 마른 관념을 덧칠할 때
생각은 곰팡이처럼 번식한다.
죽을 것 같다는 서늘함이 덮치면
무한히 증식하던 것들이 동력을 잃고
어둠의 바닥으로 추락한다.
길 잃은 유리 조각들이
비로소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