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가을이 깊어가면 나는 어김없이 서랍 앞을 서성거립니다.
그 속에는 아빠에 대한 기억들이 그득그득 차오르다 못해 넘쳐흐르곤 했습니다.
쏟아내 버리지도, 그렇다고 온전히 닫아두지도 못한 채
나는 낡은 서랍 손잡이만 하염없이 만지작거렸습니다.
그럴 때면 먼지 쌓인 기억의 날카로운 모서리들이
마른 잎처럼 바스락거리며 내 발등 위로 툭툭 떨어지곤 했지요.
그 무거운 계절을 지나며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를 향한 미움도, 끝내 놓지 못한 사랑도 결국은 짐이 되어
나를 이 낡은 서랍 곁에 묶어두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그 무거운 이름 하나를
조금 가벼워진 가을바람에게 슬쩍 내어주려 합니다.
그리하여 가끔은
베란다 햇살 아래 놓인 화분 속에서
무심하게 잎을 틔우고 있는 아빠를 봅니다.
늘 내 옆에 있었지만 늘 무심했던
지우고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그 얼굴이
초록빛 식물이 되어 나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미움도 사랑도 다정한 짐이 되어
이제는 그저 내 곁을 말없이 지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