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밤의 검은 바탕 위로 별들이 돋을 때마다
수천 년 전 조상의 실루엣을 추적하던 적이 있었다
그것을 시의 허기라 믿었던,
비대(肥大)한 주체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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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를 마주한 건 어느 적막한 정오였다
신의 입술이 "나의 말은 이미 너의 육신이다"라고 닫힐 때
나는 "전부 젖었습니다"라는 대답으로 옷을 벗었다
살결을 비집고 들어오는 운명의 냉기
그날부터 나의 몸은 달팽이가 기어간 축축한 궤적이었다
내 안의 달팽이가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그를 '타자'라 명명하고 그 속으로 침잠했다
지평선이 물결치듯 휘어지고 햇살이 칼날처럼 살점을 베어내는 곳,
어둠을 밀어 올리는 긴 더듬이 끝
투명한 안구(眼球)가 되어 세계의 비틀린 면을 응시했다
수만 년을 버텨온 생(生)의 하중이 점액처럼 무겁게 흘러내렸다
이제 나는 주인이 아니다
나의 생은 온통 달팽이가 기어가는 시간이었으므로
나의 자아는 그가 지나간 자리에 잠시 머물다 흩어지는
비릿한 그림자의 잔해(殘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