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흔적

by 마루

썼다. 지웠다.

글은 쓰고 지우며를 반복할 수 있다.

잘 써진 글은 남겨두고, 만족할 수 없는 글은 지운다.


삶은 쓰고 지우는 글처럼 되질 못한다.

매번 흔적을 남겨 내가 잘한 것뿐 아니라

지우고 싶은 못난 것까지 차곡차곡 새겨진다.


이걸 했어야 했나, 저걸 하지 말았어야 했나.

다른 고민과 선택을 마주하고 같은 시련과 아픔에 절망하기도 한다.


일도, 공부도, 사랑도, 여행도.

내 자아를 지키기 위해 살았던 시간과 남겨진 흔적이 써진 글처럼 읽어진다.


지워진 글은 아무것도 없이 영영 사라진다.

그와는 다르게 삶의 흔적은 기억에 남아 흐려지기도, 더욱 선명해지기도 한다. 그대로 놔두어 잔잔한 바다에 파동 없이 고요해지기만을 선택할 수도, 따르는 고통과 함께 상실된 과오를 되새길 수도 있다.


마주한 고통이 지워지지 않는 아픔이지만, 괜찮다.

내 지난 과거를 돌이켜볼 수 조차 없는 지워진 글처럼은 되지 않았으니까. 그걸로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지워지기만을 바라는 건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삶은 쓰고, 남겨두고, 쓰고 읽어보는 것이다.


지금은 보잘것없게 보이는 글이라도

써 놓고 나중에 보면 좋은 글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듯

인생도 한 번 써나가 보는 거다.

쓰고, 남겨두고, 쓰고, 다시 읽어보는 시기가 올 때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써나가도 늦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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