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세상에는 수많은 일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더라. 문제들이 보이는 그 중심에서 하루를 살아가며 느낀 게 있다. 좋은 일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힘든 일은 한 번에 온다는 걸. 내가 왜 이렇게 느낀 건지는 단박에 설명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내게 닥친 힘든 일이 순차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다가왔으니까. 태풍에 흔들리는 나무가 된 듯 정신을 못 차리게끔 나를 쥐고 흔든 일들이 모두 그랬으니까.
‘당연한 것들’
일단 코로나 19가 가장 컸다. 이번 해 2월 말부터 한국을 쥐고 흔들었으니 내가 흔들리지 않을 재간은 없었다. 처음엔 바이러스가 또 시작이겠거니, 메르스처럼 화제가 되고 다시 사라지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지긋지긋한 싸움은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었다. 일상에 녹아든 이 골칫거리는 우리에겐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싸우고 싶지 않은 문제가 내 일상에서 활개 치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봐야만 했다. 그리고 내가 누리던 일상의 목록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는 것도, 카페에서 생과일주스를 마시는 것도, 기분전환을 위해 여행을 가는 것도. 사실 여행이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일상을 살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인 듯 나에겐 살기 위한 원동력을 제공해주니까. 그런 부분, 즉 자유를 잃은 기분으로 집에서 일상 아닌 일상을 보내며 코로나가 빨리 끝나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7개월 가까이 된 이 시점에서 이제는 인정해야 하지 않나 싶다. 누리지 못함을 슬퍼하기보다 감사해야 하는 쪽으로. 이때까지 이런 자유 속에서 세상을 누려왔구나, 난 생각보다 행복했구나. 합리화일 수도 있는 이 마음엔 안타까움이 거의 절반이다.
‘함께 있지 않아서 함께인 게 어색한 우리’
이런 가운데 가족은 이사를 했다. 갑작스레 이사를 하게 된 터라 어수선하고 힘든 과정은 있었지만 깨끗하고 넓은 집을 보니 기쁜 마음이 생겼고 희망이 부풀었다. 그런데 맑은 하늘 뒤에 태풍이 온다고, 행복한 마음은 뒤로한 채 문제가 곳곳에서 터져버렸다. 유난히도 많은 비가 내리는 올해의 날씨 덕에 3년밖에 되지 않은 집 천장에서 비가 누수된 것이다. 천장뿐 아니라 창문에서도. 깨끗한 집이라서 행복했던 그 마음은 순식간에 불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전환되었고 흐린 구름이 낀 하늘처럼 우중충한 벽지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족은 분열 직전의 위기를 맞았다. 우린 이번 이사할 집에서 처음으로 다 같이 살게 된 것. 그 때문인지 이사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서 서로가 서로에게 실망하는 부분들이 쌓여만 갔다. 그리고 폭발했다. 큰 굉음이 일어난 뒤엔 감정적 폭발 대신 이성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조용한 카페에 가서 속 깊은 얘기를 나누었고, 저녁을 먹다가도 마음속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도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감정적 폭발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나서는 슬펐다.
나를 둘러싼 문제들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 외에도 오늘 일어난 문제, 그리고 과거에 일어난 현재 진행형 문제들. 이들은 작정한 듯 한꺼번에 몰려오고 그들을 마주할 때 가끔은 살기가 벅차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나는 이 벅참의 상황들을 인정하는 게 힘들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만 일어나는 건 아닌지 의구심도 들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난 생각했다. 거센 태풍 안에서도 고요한 태풍의 눈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내가 태풍의 눈이 될 순 없을까.
일어나는 일을 해결하거나, 혹은 막을 수 없다면 그저 현재 둘러싼 폭풍 속에서 내가 태풍의 눈이 되는 것이다. 거센 비바람이 부는 태풍과는 다르게 태풍의 눈은 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는 고요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렇다고 태풍의 눈이 태풍에 속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눈도 태풍의 한 소속이다. 또한 중심이다. 태풍의 중심에 위치하여 이름처럼 눈을 가지고 일어나는 폭풍을 지켜보는 무법자다. 그 무법자는 그들이 소멸할 때까지 그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겁내지 않는 차분함을 유지한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무법자인 태풍의 눈과 같이 나를 둘러싼 문제들에 침착하게 지켜볼 수 있을까. 이때까지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다. ‘언젠가는 해결될 문제 속에서 해결되지 않아도 살아갈 나’를 위해 거센 폭풍의 중심에서 내 자리를 지키며 나아가고 싶다. 지나가는 태풍을 보며 오늘도 그렇게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