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동네에 있는 놀이터를 보았다. 그곳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장소를 불문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또 어디에선가 자유롭게 날개 짓을 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잊은 듯, 그곳만이 내 세상의 전부인 듯 천진난만하게 뛰어논다.
누구나 한 때 그러한 곳이 있다. 내 세상의 전부로 여겨지던, 그래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장소가 있다. 때때로 확장되는 추억은 가을과 겨울에 이불을 덮어주고, 봄과 여름에 이불을 걷어가며 나를 자연스럽게 그 시야 속으로 데려다준다. 그 놀이터가 내게 깃든 한 장소를 떠올려주는 것 마냥.
나는 자주, 그리고 가끔 찜질방에서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그곳은 제2의 집이자 놀이터였다. 모든 것을 잊게 만들어주는 마법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 가족은 이 마법이 일어나는 찜질방에서 하루를 보낸 것이다. 학교에 등교하기 전에 아침으로 먹는 미역국과 육개장, 전날 밤 야식으로 먹는 컵라면과 핫바는 달콤한 기억으로 남아 떠올려진다. 그때의 시야로 본 그곳은 운동장으로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뛸 수 있게 넓은 곳이다. 또한 숨바꼭질과 각종 게임을 해도 무리가 없는 놀이터의 구색을 다 갖춘 그런 곳이다.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등교하기 위해 기상을 하고 나가야 될 시간이 되면, 집에서의 똑같은 행위라 하더라도 왠지 더 싫은 감정이 돋아나기도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나가는 것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좋았다. 겨울의 한 낮 햇살처럼, 가을에 밟는 낙엽 길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나만의 놀이터인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이유로, 뜻밖의 일로 인해 나의 놀이터가 된 그곳은 여전히 내 안에 축소되지 않은 채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