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생겨나기를 순환한다. 그 자리에 존재하던 것이 소멸하고 필요로 하는 대상이 새로이 탄생하는 과정이다. 눈에 담겨 있는 원래의 모습이 있던 그 자리에는 얼마나 무수히 많은 실타래가 엉켜있을까.
한 가족의 삶, 그 가족의 이웃, 그리고 후손들. 한 인간의 생애마다 젖어있고 연결되는 파장은 크고 깊다.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모든 흔적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눈에 담긴 기억의 잔여물이 있는 한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에서조차 엉켜있는 소중한 형상이 떠올려질 것이다. 추억이라는 희미한 무지개를 따라 마음에 저장된 상자를 더듬더듬 찾아가다 보면 언제든 열어볼 수 있다. 허물어지고 부서지고 파괴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연결된다. 기억하고 찾으려는 마음으로 상자를 간직할 의지만 있다면 닿을 수 있다.
어쩔 땐 생존을 위한 생명력으로 하여금 추억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끈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려 잡아당기는 걸 느끼게 된다. 이미 차곡차곡 쌓인 상자이기에 놓으려고 해도 쉽사리 그러질 못한다. 그렇게 질기고 강력한 연결성으로 잘 포장되어 있는 그 상자. 이따금씩 풀어서 마주하게 될 땐 다시 만질 수도 말할 수도, 만날 수도 없다. 그저 떠올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사라진 것, 버려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간과 함께 물들여진다.
길을 걷다 보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동네가 있다. 사라진 동네다. 사라졌기에 그 형태가 달라져 있다. 열게 된 상자 속과 다른 모습이다. 무언가가 새로이 생겨나고 있지만 오래전에 저장된 기억과는 다른 형태로써 만들어지고 있을 뿐이다. 낡은 것이 새것의 모습이 되어 박수를 칠 일인가. 소수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어 환영할 일인 것일까. 소를 희생해 부를 얻어 기뻐할 일인가. 기억 속 포장된 선물이 현재 보이는 모습과는 달라도 괜찮다고, 그만하면 좋은 거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그 자리에 서서 동네를 바라본다. 달라진 모습을 하염없이 응시한다. 달라졌지만 없어지지 않음을, 여전히 존재함을 확인해 본다. 살아있는 한 거기 그대로 남아있을 조각들이 상자에 빠짐없이 밀폐되어 있음에 안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