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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하얀 색인건

by 마루


하염없이 눈을 기다리던 때가 있다. 추위에 떨며 바라보는 눈은 연말에만 느낄 수 있다. 연말의 분위기에 젖어서, 흐트러진 기분이 좋아서 등의 이유를 일부러 만들어내곤 한다. 겨울의 특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이번에도 꼭 눈을 볼 수 있기를 고대했다. 낙엽이 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이는 나무에게서 쓸쓸함과 허전함이 느껴질 때, 곧이어 덮쳐올 새하얀 겨울을 떠올린다. 아, 내겐 눈이 있었지. 내겐 눈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게 다가온다. 계절의 경계에 따른 빈자리를 채워줄 겨울의 등장을 기다린다. 매년 볼 수 있기에 매년 고대하는 그 마음은 신기하게도 벅차오른다.


한 번은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 눈이 내린 적이 있다. 창 밖에 보이는 하얀 눈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듯 소리를 지르며 설레는 마음을 표출했다. 수업 시간인 걸 잊어버린 듯 많은 반 중 우리 반 선생님과 아이들만 내리는 눈을 맞이하러 나간 것이다. 쌓여봤자 얼마나 쌓일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바닥에 넓게 눈이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 덕에 짧은 시간 동안 잠시나마 눈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눈이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내리는 눈을 몸으로 맞으며 뛰거나, 조그맣게 뭉친 눈으로 눈싸움을 하면서 말이다. 수업 시간에 내린 눈을 맞이할 수 있었던 순간과 그 추억을 간간히 떠올려볼 수 있음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눈 밭 위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하얗고 깨끗한 눈이 더러워진 몸과 마음을 정화해 주며 씻겨주는 것 마냥 상쾌하고 개운한 느낌이 든다. 어렸을 적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소복이 쌓인 눈을 기대하지 말고 내년에 먹을 떡국이나 기다리라고. 그렇게 나를 달래준 기억이 난다. 눈은 왜 하얀색일까. 하얀색이라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게 된 걸까. 그렇게 내년이 오는 설렘을 가져다주는 걸까. 연말에 내리는 눈이, 보이는 눈밭이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한 해 동안 묵은 때를 씻고 다음 해도 잘 살아가보려는 마음으로 눈을 맞이하는 건가 싶다. 더불어 하얀색 떡국으로 마무리를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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