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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명 Aug 20. 2021

이곳에 없을 법한 공간

지하의 보물, 카페 언트(unt)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과천에 트렌디한 카페가 생겼다는 것은 꽤나 반갑고 놀라운 소식이다. 상권이 오래되었고 베드타운의 성격도 짙은 도시이다 보니 서울에서의 카페 트렌드가 들어오기에는 녹록지 않은 환경이다. 최근에는 그 흐름이 조금씩 바뀌고는 있으나 개인 카페 및 새로운 공간들이 생겨날 때면 사람들은 여전히 생소해하며 방문하는 편이.


여러 번에 걸쳐 방문했던 곳은 카페 언트(unt), 과천 시내에서 벗어난 한적한 곳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대중교통 동선과는 1~2분 정도의 거리가 있어 사진과 같이 앞으로 뻗은 길을 따라 산책을 시작하며 언트로 향하게 된다. 걸음 끝에 도착할 공간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기대해보는 마음으로 작되는 경험이다.

UNder Treasure


'아래에 있는 보물'이라는 뜻이다. 혹은 숨겨진 보물처럼 들리기도 한다. 어떠한 의미일까?


우선 쉼의 요소를 담은 공간이 되기를 지향한다. 앞서 언급했듯 짧지 않은 도로를 따라 올라오며 도착한 곳이기에, 사람들이 편히 시간을 보내다 가면 좋겠다는 배려 어린 마음이 담겨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지하의 공간이 백미인데, 지상과 지하 간의 연결 통로를 내어 독특한 디자인으로 풀어낸 공간이 인상적이다. 그 분위기가 업장의 외관이나 1층 내부의 것과는 분명히 결이 다르고, 또 새로운 경험이 된다. 지하의 보물을 발견하게 만드는 컨셉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통일된 컬러톤에서 확실한 정체성이 부여되고, 무엇보다 언트라는 하나의 공간 아래 3가지의 얼굴로 장소를 전개시키는 변주가 고유한 가치를 만들어낸다. 이곳만이 가진 진정한 보물이다.


매장 뒷편의 주차장과 함께 하는 푸른 자연


주위의 건물들과 환경에 어울리는 외관이다. 이질적인 독특함 대신 조화와 어울림을 선택한 결과이다. 자연스럽게 그늘진 외부 공간은 잠시 들렀다 가거나 바람을 쐬기에 좋다. 깔끔하게 마감된 페인트칠과 로고, 기둥이 갖는 직선의 안정적인 구조감과 넓은 통창이 자연스레 어울린다. 내부 공간에 대한 궁금증이 자연스레 샘솟는다. 성공적인 첫인상이다.



벽면과 기물 등이 크림색으로 전체적인 톤을 유지한다. 주장이 강하지 않은 색과 깔끔한 질감이 돋보인다.

반면 테이블과 의자의 디자인, 주황색의 텍스트 같은 디테일들에서 엣지 있는 개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여백과 자연


프레이밍이 돋보이는 1층이다. 통창 너머로 보이는 자연을 공간이라는 액자 안에 담는다. 편안한 감상에 집중하기 위해 그 외 불필요한 요소들은 덜어내었다. 그렇게 미니멀한 인테리어는 자연과 어울리는 쉼의 경험을 구현하기에 좋은 선택이 되었다. 오브제 같이 놓여있는 의자와 기둥들이 그러하다. 색감은 어둡지 않지만 밀도가 있다. 대비되는 그림자는 부드럽게 깊은 모습이고, 밝은 면의 질감은 매끈하다.


시선이 분산되는 요소 하나 없이 오로지 빛과 풍경을 보여주기 위한 뺄셈의 미학인 것이다. 기교 없는 담백한 공간 연출 덕에 우리는 밀도 높은 쉼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 가치를 전달하는 과정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베이지와 카키, 전부 크리미한 색감으로 조화되는 모습이다


창을 내어 자연을 담는 액자로써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즐기기에 좋고, 4계절의 변화가 공간의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특징을 갖는다. 봄의 풋풋함과 여름의 녹음, 가을의 낙엽과 겨울의 눈으로 바뀌어가며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상은 다채로워진다. 그럼에도 잘 짜인 내부의 모습은 정돈되어 흐트러지지 않는다. 방문한 사람들을 언제든 눈앞의 자연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발견의 시작


1층의 바 옆에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보인다. 언트의 이름 그 자체이자 가장 집중적으로 의도하였던 곳이 본모습을 숨겨놓은 채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다. 본격적으로 내려가기 전에 잠시 위치를 바꾸어 뚫린 공간을 통해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게 된다.


슬라브(slab)를 의도적으로 뜯어내어 계단으로 연결지은 과감한 시도가 1층과는 다른 반전의 면모를 보인다. 추가적 비용을 들여가며 기존의 공간을 뒤집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의지는 건축적 경험을 전달하려는 진심과 열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물론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굳이 파악할 의무는 우리에게 없다. 더군다나 개인의 취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 덕에 우리의 문화생활과 교양에 엮인 인식은 한 층 확장될 수 있다. 그리고 단순한 방문과 커피 한 잔을 사며 얻을 수 있는 이점임을 생각해본다면, 꽤 괜찮은 가성비를 보이는 경험이기도 하다. 무료로 입장 가능한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의 감상적 이점을 취하는 만큼, 잘 만들어진 카페 및 문화 공간에서도 우리는 유의미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슬라브: 건축에서 구조물의 바닥이나 천장을 구성하고 있는 판 형상의 구조 부재)



계단을 따라 내려오며 보이는 왼편의 넓은 공간에서 새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과거 유통업과 과자 창고로

쓰였던 지하공간이라 한다. 환기가 중요했기 때문에 높은 천장과 통창을 내어 공기의 순환을 의도했다. 따라서 넓은 공간감을 느끼기에 제격이며, 시원한 온도감이 두드러진다. 또한 기존에 사용하던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활용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동선을 걸으며 주위를 감상하는 과정이 생략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계단은 물리적 이동의 경험을 파생시키고 공간을 더 잘 각인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길을 따라 걷는 위치가 변함에 따라 시선 역시 변화한다. 감상의 순간에서 보이는 이미지들은 우리의 기억에 남는다. 그 이미지가 공간의 한 단면이라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방식이 된다.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본인들이 준비한 가치를 사람들에게 명확히 인지시키고, 공간이라는 실질적 결과물과 관계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성공의 여부는 진정성과 정확성에 대한 노력에 달려있다. 나 역시 보고 느낀 바를 사진으로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구도와 빛, 색감 등에 노력을 기울이려 애쓴다. 무언가를 창조하고 전달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의미를 나누고자 하는 표현과 상대를 인정하는 관계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넓은 공간에 다양한 형태의 선(線)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독특한 구도와 이미지에 시선이 간다.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자연스레 집중이 되고, 천장의 파이프 구조들은 그대로 드러나있지만 크림색의 페인트칠로 꼼꼼하게 마무리된 모습이다. 공간의 개성이 완성도 높게 표현되고 있는 지점이다.




자연을 품은 지상과는 달리 지하에서 빛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한다. 전체를 밝히는 조명 대신 부분을 밝히는 조명을 설치했고, 자연광이 전체적인 자연스러움을 더해준다. 가운데 설치된 긴 테이블과 높게 솟은 두 개의 기둥들이 넓은 공간에 힘을 더하는 무게감과 중심이 된다. 전체적으로 굵직한 선들과 작은 기물들의 선,

그리고 빛의 대비가 함께 공존한다. 또한 작품이 전시되는 목적으로도 공간이 활용되고 있다.


과거의 구성(왼쪽 의자)과 현재의 구성(오른쪽 소파)의 비교

근처 거리에 없을 법한 공간이라는 표현이 제격이다. 그만큼 이색적인 개성을 갖추었고, 그에 일관된 경험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건축적 의도들을 느낄 수 있다. 외부와는 다른 공간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다른 시간을 느낄 수 있으니 과연 흥미로운 관계가 생겨나는 곳이 아닐 수 없다. 공간은 물론 음료와 디저트에도 신경을 쓰는 업장이다. 맛 좋은 커피를 판매하며 특히 바스크 치즈케이크가 훌륭하니 이용에 참고하시길 바란다.



장소: 카페 언트(unt)

시간: 평일 10:00 - 20:00 / 주말, 공휴일 11:00 - 21:00

주소: 경기 과천시 남태령 옛길 97 1층

연락처: 0507-1370-7714

인스타: http://instagram.com/cafe_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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