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현실에서 어떻게 그려질까. 백색 도화지 위에 선 하나하나를 손수 그리는 것,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디지털 편집을 거치는 것, 작은 물체 하나를 직접 다듬어보는 것 등. 자신의 내면을 담아 그 형태를 기술로 구현해내는 방법은 현존하는 예술가들의 수만큼 다양할 것이다.
조각을 하던 한 예술인이 있다. 자신의 길을 걷던 그는 이후 디지털이라는 개념과 기술에 매료된다. 물체를 손으로 조각하던 것에서 전자기기를 거치는 것으로 본인의 표현법을 완전히 바꾸게 된 것이다. 특히 애니메이션 기법을 선택하여 자신의 예술적 표현에 움직임을 부여한다. 그렇게 조각가였던 그는 미디어 아트 작가로서 변모하게 된다.
오늘 소개할 공간의 주인이자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이남 작가의 이야기다. 이이남 작가는 고전 미술을 현대 디지털 기술로 해체 및 융합하는 창의적 연출을 통해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미술과 기술을 예술적으로 융합시킨 창의적사례가 되어 보인 것이다. 그는 전라도 광주 출생이다. 광주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미디어아트 창의 도시이기도 하다. 작가의 예술성과 지역성 간의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특히 양림동은 다수의 문화예술인이 태어난 지역이다. 선교사 사택과 펭귄마을이 대표적인 볼거리로 뽑히며, 특히 1960-70년대에 지어진 주택들이 자연과 어우러지는 옛된 모습은 독특하고도 편안한 감상을 준다. 주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이이남 스튜디오, 작가의 예술성을 지역과 풍부히 연계시키기 위해 고안된 스튜디오이자 복합 문화공간이다. 내부는 작가 본인의 창작 공간, 미디어 아트 뮤지엄(M.A.M), 카페테리아로 구성되어 있다.
대중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그의 예술관과 관계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질문은 새로운 관점에서 의문을 자아낸다. "누군가의 방대한 예술관이 건축으로 표현된다면 어떠한 모습일까?" 이이남 스튜디오는 이 추상적인 질문에 명확히 답한다. 빛, 벽면, 높이 등 건축적 구조를 적절히 활용하여 작품을 드러나게 하고 그 안에서 관객의 자유로운 동선을 완성시킨다. 잘 만들어진 카페의 차원에서 몇 단계 더 나아간 건축적 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비록 작가와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공간 곳곳에 녹아든 그의 손길과 생각들에 발맞추다 보면 감상의 시간은 금세 흘러가게 된다.
문화 & 역사적 정신
유휴공간으로 비어있던 제약회사의 창고를 리모델링했다. 또한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한 피터슨 선교사의 사택이 있던 터에 위치하여 그 장소적 의미가 깊다. 최근카페들이 많아져 핫플로 언급되는 양림동에서 이이남 스튜디오는문화역사적 맥락을 담은 건축을 선보이고 미디어 아트 대중화를 위해충실히역할하고 있다.
투명, 반투명, 불투명의 속성으로 구분된 파사드는 묘한 입체감을 갖는다. 특히 외벽의 회색 벽돌은 선교사 사택을 표방 및 구현한 의도이다. 과거의 존재에 대한 존중과 역사적 인식을 담아낸 건축이자 마음이다.
공간을 들어서자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예술은 미디어 아트 작품들이다. 작가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형태로써 디지털 화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그림을 볼 수 있다. 고전미가 부각되는 인테리어의 기능과 전시의 기능을 동시에 겸한다. 편히 앉아 담소를 나누며 좋은 작품은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공간 활용의 예술
가장 흥미롭게 다가온 점은 공간 전체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나선형 계단과 그 앞에 놓인 재해석된 피에타이다. 이탈리아 바티칸에 가야 볼 수 있는 조각과 건축적 구조를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 및구현해냈다. 마리아의 품에 안겨있어야 할 예수는 계단을 끝까지 올라야 닿을 수 있는 천장에 매달려 있다. 고전 작품들의 기존 구성을 해체하고, 분리된 요소들에 자신의 시선을 덧입혀 새로운 움직임과 의미를 부여한다.
예술적 의도는 쉽사리 파악되지 않는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며 의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명확한 답이 도출되지 않았지만 문제는 없다. 예술을 추측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지난하지만, 힘써 생각하거나 감정적으로 느끼는 행위는 스스로에게 교양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된다.
스튜디오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공간은 크게 2개인데, 이 나선형 계단이 그중 하나이다. 계단을 따라 걷다 보면 내부와 외부, 근경과 원경 등을 번갈아 볼 수 있다. 위아래로 연결된 수직적 방향성을 둥근 동선으로 체험하는 건축적 산책로가 된다.
옆 공간으로 연결된 미디어 아트 뮤지엄, 통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뒤로한 채 움직이는 보라색 들판을 바라본다. 자연의 원형을 벗어난 색채와 형태가 기묘한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킨다. 일상에서 낯선 미(美)를 발견한다면 이런 것일까. 또한 외부에서 보이는 관람자의 모습은 들판 앞을 거니는 자유로운 오브제가 될 것이다.
앞서 보았던 나선형 계단과 같이 수직적 연결성을 확보한 공간이 눈에 띈다. 다만 구분되는 점은 천창을 낸 넓은 여백이 직접적인 빛의 통로로써 작용한다는 점이다. 특히 보라색 조명을 받은 2층의 펜스가 다음 여정으로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체의 모습과 걸음의 방향을 볼 수 없는 어둠의 공간이다. 고요하고 추상적인 음악과 함께 독특한 명암 대비를 이루는 미디어 아트의 광활한 구성은 감상자 개인의 존재감을 압도한다. 일상적 공간 탐방에서 약간의 두려움이 더해지고, 보이는 빛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비일상적 경험으로 나의 시간이 편입된다.
'빛으로 피어나다'를 주제로 明(밝을 명) 한자를 좌우, 상하 반전하였다. 밝음은 빛만으로 이뤄질 수 없되 어둠이 있어야 드러난다. 어둠 속의 빛이 진정한 밝음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개방성 & 연결성
자연과의 관계를 개방적으로 설정한 2층 공간이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실제 자연과 작품 속 디지털 자연의 대비가 조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독특한 디자인의 테이블과 대리석 의자의 기하학적 형태 등의 요소가 시선을 붙잡는다. 외부 정원은 소음 없이 자신의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조용한 환경이다. 특히 건물의 전면부 즉 파사드까지 내어져 있는 개방적인 통로로 역할하기도 한다. 공간의 내부에서 외부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감상의 걸음이 끊기지 않고 연장되며 크게 순환한다.
자연과 함께했던 공간 이외에도 2층에는 작가의 서재와 작업실이 위치해있다. 천창으로 빛을 받아들이던 통로의 중간 위치에서 밑의 1층을 내려다보게 된다. 위치의 변화에 따라 시선이 다르게 전개되는 공간 서사이다. 각 공간은 색감과 구조의 중첩이 없기에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낸다. 마치 작가의 머릿속에 위치한 생각 저장소들이 구현된 듯, 우리는 그 사이를 넘나들며 여행자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체험하게 된다.
이이남의 피에타는 계단을 올라 3층에 도달한 끝에 완결된다. 마리아의 품으로부터 분리된 예수는 천장에 매달린 채 외로이 존재한다. 1층으로부터 해당 높이까지 분포된 작품 전체를 감상하는 방법은 직접 내딛는 발걸음을 통해 가능했다. 단순히 벽에 걸려있거나 눈높이에서 보았던 작품 감상의 패러다임을 공간적 수직성을 통해 확장시켰다. 우리의 몸을 직접 움직이며 작품을 밟아보고, 봄으로써 주체적으로 상호작용하게 만든다. 본 스튜디오의 공간에서만 겪을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이다.
이이남 작가의 예술성과 스튜디오의 가치는 '융합'이라는 의미에서 빛난다. 디지털 기술로 고전작품을 재조명한 작가의 방법과, 더 넓은 작품관이 건축적 맥락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 모두 창조적 융합 속에서 궤를 같이 한다. 비어있던 창고 공간을 예술로 채우고 역사의 기억을 보존한 정신성 현대문화적 귀감이 된다. 광주 지역적의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들 중 하나로써 훌륭한 가치와 매력이 지속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