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훤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첫 시필사! 슬기가 선물해 준 메모패드에 남겨 보았다. :) 일상에서 스쳐지나갈 수 있는 키워드를 꼭꼭 잡아두는 예쁜 메모패드. 시를 적어도 예쁘다.
번지는 것은 오점을 남기는 것.
그래서 사람같으며, 삶이라 하는 걸까.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물드거나, 그리고 그 사람이 나에게 물들 때. 그때에 삶의 방점을 찍게 된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는 놀라움.
번지다.
#1일1시 #100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