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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로나 Aug 25. 2022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게 당연한 나이, 마흔둘

엄마를 안양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광명에 사는 친구 집들이 가는 길에 얼마 전 이모가 만들어준 딸기잼을 갖다 준다고 말이다. 버스를 타고 올 엄마를 기다렸다. 친구분 집까지 데려다주고 우리의 일정을 치렀다. 다시 나오려면 버스를 타고 안양역까지 나와야 되는데 초행길의 엄마가 걱정되었다. 말로는 갈 때쯤 전화 한 통 주라고 했는데 그게 몇 시쯤 될지 은근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주말 농장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들어와서 늘어지게 낮잠 한 숨 자고 일어났다.  엄마의 전화. 벌써 안양역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단다.  미리 전화라도 해주지 했다가 새삼 감사했다. 아직 쌩쌩한 우리 엄마. 아직 젊구나 싶어서.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었던 건 부모님에게 받은 살가운 말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는 것도 한 몫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때의 엄마는 일도 하고 육아도 하고 며느리, 딸, 학부모 모든 걸 냈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견딜만한 건데. 친정이 가까이 있지 않은 것도. 누구처럼 반찬을 얻어먹거나 아이를 맡길 수 없는 것도. 나는 그저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어쨌든 외벌이에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돈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양가 부모님이 일을 하셔서 돈을 벌고 계시고. 건강하게 지내시고. 딱히 신경 쓸 게 없다는 것이 새삼 감사한 상황이다. 서운함은 잠시 뿐. 내가 기억해야 할 감사함이 훨씬 더 많다는 걸. 누리고 있다는 게 이렇게나 많다는 걸 너무나 쉽게 잊고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서둘러 한림대 강남 성심병원에 다녀왔다. 일주일 전에 했던 첫째 아이의 피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건강검진을 했는데 추가 검사가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진료를 받았던 터였다. 병원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눈물이 났다. 큰일도 아니고, 확실하게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해서 검사했다지만 막상 결과를 들으러 가는 마음은 단단하지 못했나 보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고, 다만 6개월 주기로 정기 검진을 하자고 하셨다. 이상 없다는 진료 확인서를 받아 들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병원 문을 나서면서 그제야 허기가 느껴졌다. 지난주에 아이와 같이 왔을 때는 맛있는 점심도 먹고 들어갔었는데, 오늘은 그토록 기다린 혼자만의 시간이었건만 지난주만큼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걱정 한 시름 놓으니 이 정도 허기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가 아닌 가족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 많다. 버거울 때도 있다. 그저 비합리적인 의무감이라고만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만큼 삶에 대해 제대로 겪고 넘어갈 시기가 있을까 싶다. 누군가를 돌보고 챙기는 에너지가 가장 왕성한 시기, 마흔둘이다. 균형을 잃지 말아야지. 나는 내 자식도 챙겨야 하지만 나의 부모도 챙겨야 하는 나이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 힘은 크던 작던 오래전부터 받아온 사랑 덕분에 생겨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으로 지금 나의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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