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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로나 Jun 30. 2022

괜찮아, 다음 버스를 타면 돼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는 날이었다. 아이가 하교하고 오면 같이 가려고 기다렸다. 도서관에 가자는 말에 아이가 한껏 신이 났다.


"엄마! 역시 약속을 지키는구나!"


무슨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날씨 좋은 날에 00 공원에 가기로 한 약속 잊지 않았어. 나 너무 기분 좋아."


몇 주 전, 도서관 옆 공원에 갔었다. 모래 놀이도 하고 분수대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로 붐볐다. 운동화를 신고 왔다는 이유로 다음에 와서 놀자고 두 아이를 설득했다. 그걸 기억하다니! 난 도서관만 가려고 했던 건데 말이다.


아무튼 아이는 모래 놀이 도구도 챙겨서 어느새 현관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분수대에 발을 담그려면 크록스가 딱인데 아쉽게도 살짝 작다. 그래도 꾸역꾸역 발을 구겨 넣고 집을 나섰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아이의 발이 불편할 듯싶었다.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은 8분 남았다. 집에 가서 신발을 가져와서 신기고 크록스는 가방에 넣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놀이할 때 잠깐 신는 건 괜찮을 테니까.


"엄마 얼른 집에 가서 신발 가져올게."

"버스 오면 어떡해. 나 빨리 가고 싶단 말이야."

"아니야. 불편한 것부터 해결해야지. 다음 버스 타도 되고. 괜찮아. 기다려."


솔직히 이번 버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날도 더운데 또 기다리기 싫으니까. 뛰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도 1층에서 대기 중이었고. 9층까지 올라가는 시간이 더디기만 했지만. 나의 두 다리를 믿어보기로 했다.


아이 신발을 들고 나와서 달렸다. 버스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더 달렸다. 다행히 버스는 아직 도착 전이었고, 나를 본 아이는 환하게 웃었다.


매일 아침 빨리빨리! 를 외치는 엄마다. 아이의 사소한 실수에도 너그러움보다는 속상함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서툴고 부족한 엄마다. 매번 후회하고 다짐하지만 왜 그리 어려운 걸까. 그날 내가 아이에게 해 준 "괜찮아 다음 버스 타면 돼"라는 말은, 사실 나 자신에게 필요했던 게 아닐까.


오늘도 잠든 두 아이를 떠올리며 반성의 시간을 갖지만, 그래도 우리만의 괜찮았던 순간도 있었음을 떠올려본다. 등이 간지럽다고 해서 긁어줬는데, 마침 둘째가 가져온 책이 <<가려워 가려워>>여서 얼마나 웃었던지. 배꼽 잡고 웃는 순간을 많이 만들어서 화내고 재촉하는 엄마의 모습 좀 희석시키는 수밖에 없겠다.


내일은 더 많이 웃고, 더 자주 '괜찮다'라고 말하는 엄마가 되어보련다.


출처 : anniespratt,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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