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로나 Jul 13. 2022

꿈의 형태를 잃지 않는 것

전업주부의 꿈은 포기가 아니라 보류

출처 : Pixabay


꿈을 이룬 증거가 "직업"일까?

나의 꿈은 라디오 방송 PD였다. 

고등학교 1학년 점심시간. 방송을 하는 선배들을 보며 현실인지 꿈인지 신기했었다. 

방송부가 하는 일이 그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신청 사연이나 멘트를 읽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점심, 석식 방송 때는 물론, 아침 조회, 특활 비디오 시청 시간 때마다 수시로 교실을 돌며 방송이 잘 나오는지 확인해야 한다. 

아나운서가 아니어도 PD, 엔지니어도 안내 방송은 해야 한다. 교무실 바로 옆에 있는 방송실이라 선생님들이 수시로 들어오셔서 여러 가지 일을 시키기도 한다. 

생각해 보니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훨씬 많았었구나. 

중학교 때부터 라디오 방송을 좋아했고, 용돈으로 좋아하는 가수의 테이프를 사러 다녔다. 교보 핫 트랙스에서 음반을 사고, 하디스에서 햄버거를 먹었던 그 시절이여! 응답하라 1994~1996!!!!


고등학교 방송부에 지원한 건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라디오와 음악을 즐겨 들었던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방송부에 문을 두드리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원서에 좋아하는 뮤지션에 대한 내용을 써서 PD 분야에 면접을 봤다. 그렇게 PD 2명, 아나운서 2명, 엔지니어 2명으로 동기들과 함께 고등학교 방송부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와 같이 PD였던 친구는 글도 잘 쓰고 음악에 대한 지식도 풍부했다. 자주 편지도 주고받으며 취향 공유를 가장 많이 했던 친구였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그 친구는 반수를 하고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친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정말 방송 관련한 일을 하고 있을까? 

하고 싶은 마음으로만 꿈을 이룰 수는 없었다. 노력이 수반되어야 했다. 비록 관련 학과로의 진학은 실패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현실은 꿈과 멀어졌지만. 20년도 훨씬 지난 지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여전히 음악을 좋아하고 위로받으며 감성을 지켜가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며 그래도 예전에 꿨던 꿈과 아주 무관하게 지내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김혜진 작가님의 소설 <<9번의 일>>의 내용이 생각난다. 주인공의 아들은 어릴 때부터 동물을 사랑하고 수의사와 같은 꿈을 꿨지만 자신의 성적에 맞는 동물자원학과에 합격한 것으로 꿈의 형태를 잃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당장 성공만을 생각한다면 막막하고 어려운 게 맞다. 하지만 내가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계속 그 마음을 갖고 오늘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내는 것. 그런 태도가 꿈의 형태를 잃지 않는 일이 아닐까. 

느리지만 조금씩. 부족하지만 하나씩 챙겨가고 채워가는 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 꿈의 언저리에  도착하리라 믿는다.

전업주부인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무관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의 이런 일상을 지켜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가정이라는 배 위에서 덜 흔들리고 파도를 잘 타고 넘어보려는 노력이라고 해두고 싶다. 포기가 아닌 보류해 둔 나의 또 다른 꿈을 잃지 않기 위한 실천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집중하면 좋은 이유 2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