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로나 Nov 04. 2022

도서관에서 글 좀 써보려고 했다

글이 잘 써지는 때는 없다. 적어도 난 늘 그랬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아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노트북을 열고 막상 하얀 종이를 마주하면 단 한 줄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어제도 그런 날이어서 장소를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은 주로 책만 빌려왔지 열람실에 가서 공부를 한 적은 없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에게 dvd를 보여주느라 도서관의 디지털 자료실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PC와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어젠 그 기억이 나서 도서관에서 원고를 좀 써보자 싶었다.


3층 디지털 자료실에 올라가려는데 4층에 노트북실이 있단다. 그래, 저기가 좋겠다, 하며 가봤더니 열람실이랑 똑같이 칸막이 책상으로 되어 있고, 사람들이 노트북을 보고 있긴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작업을 하는 것 같진 않아 보였고, 책상에 부착된 게시글에도 또한 마우스와 키보드 소리를 주의해달라고 강조되어 있었다. 원고 작업을 하러 온 나는 여기 있다가는 민폐만 잔뜩 끼칠 것 같아서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시 3층 디지털 자료실에 들어갔다. 노트북 자리를 두 시간 예약을 할 수 있단다. 아이디로 로그인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책상에 부착된 안내 사항에는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긴장할만한 내용들이 쓰여있다. IP 충돌이 우려되니 변경하라는 내용과 또...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무튼 여러 가지 사항을 설정하라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집에서 쓸 걸 그랬다!', 아니면 '원래 가던 카페에 갈 걸 그랬다!'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저으면서 나는 지금 여기 왜 왔는가 싶었다. 내 노트북 키보드 소리가 큰 편인 점도 갑자기 신경 쓰이고. 어쨌든 인터넷만 사용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판단으로 한글 파일을 열었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기분에 휩싸인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장소를 바꾼 덕분인지, 아니면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던 덕분인지 잘 풀리지 않던 부분도 수월하게 써 나갈 수 있었다. 


예약한 두 시간이 다 됐다. 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바꾸는 식으로 환경 설정을 했더니 집에선 진전이 없던 원고를 채웠다. 하기 싫은 마음, 그 고비만 잘 넘기면 금세 글 쓰는 모드가 가동되는 걸 보면 무슨 일이든 늘 마인드 컨트롤이 우선이다. 오늘은 내 책상에 앉아서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썼다.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이든 쓰고자 하는 마음을 지킨다. 어제 도서관에서 썼던 그 마음 그대로 오늘 이어서 쓴다.  



작가의 이전글 주말엔 숲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