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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로나 Sep 11. 2020

야광 샌들이 준 용기


불현듯 찾아온 선선한 날씨를 마주하니 새삼 나의 육아 여정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 괜스레 머쓱해하며 요 며칠의 감정들을 돌아보게 된다.

아이를 돌보며 맞닥뜨리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수많은 밤들과 몽롱하게 맞는 새벽 속에서는 도저히 생겨나지가 않았던 아이에 대한 모성애를 의심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답도 생각해낼 겨를 없이 그저 통과해내고 보니 그 시간이 만들어 준 게 육아에 대한 자잘한 근육들과 지혜라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된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이 4살, 6살이 되니 이제 제법 한숨 돌릴 여유도 생기는 건가 싶었고, 그 여유들이 마치 공돈을 어디서 얻은 것처럼 나 혼자만 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육아에도 안정기가 오는 건가 하고 김칫국을 마셔댔던 날들 속에서 하루하루 순항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올해 상반기는 코로나로 인해 가정보육을 4개월 정도 하고, 한 달 정도 기관에 갔다가 다시 가정보육 시즌에 돌입하게 되니 정말 사람 미칠 노릇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게 참 얄궂다고 느껴지는 게 중간에 한 달 정도의 달콤한 휴식을 맛봐서 그런지 다시 시작된 가정보육이 너무 쓰기만 하고 괴롭기까지 했다.


코로나 확산이 심각해지니 집 앞 놀이터도 자주 못 나가게 되고, 태풍에 폭염까지, 이래저래 아이들과의 집콕이 너무나 당연한 상황이 되어버리니 어느 한 곳이 꽉 막혀 일상의 순환계가 오작동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6살 아이에게 원격수업이라는 명목으로 모니터 속 10분여 시간 동안 선생님을 만나게 하고, 몇 가지 만들기를 하는 것으로만 때우는 일상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자각이 선선한 날씨와 함께 스파크처럼 일어났다. 집에서만 계속 반복되는 상황들을 끊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아이들과 밖으로 나가서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선선해지니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어도 답답함이 전과 같지 않았고, 아이들도 물 만난 고기들처럼 이리저리 탐색하느라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해가 지는 놀이터

두 아이는 어두워진 놀이터가 자기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는지 목소리가 한껏 높아져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첫째 아이가 신발 한 짝을 벗어서 제 동생에게 준다.


"혹시 신발 벗고 미끄럼틀 타려는 거니?"

"아니야. 다민이가 여기 깜깜하다고 해서 내 신발 갖고 타라고 하려고. 여기 야광 신발 있으면 안 무서워."


하지만 혼자는 못 타겠다고 하는 동생을 위해, 그럼 내가 신발 신고 있으니까 같이 타자고 첫째가 말한다.

아이들은 그 야광 신발이 깜깜한 미끄럼틀 속을 밝혀준다고 생각했고, 망설이던 둘째도 언니의 야광 신발을 믿고 미끄럼틀을 탔다.


자신들이 해냈다고 외치는 이 귀염둥이들 앞에서,

언니의 야광 샌들이 있어서 미끄럼틀이 하나도 깜깜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아이 앞에서,

순간 무기력하고 주저앉으려 했던 요즘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야광 샌들을 믿고 컴컴한 미끄럼틀을 통과해낸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몇 년 전 아무 생각할 겨를 없이 육아의 터널을 통과해냈던 나 자신도 떠올랐다. 감정의 밑바닥을 긁어대며 불평 가득했던 요즘의 내가 부끄러워지면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김민식 피디님의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개인의 삶이 힘들 땐 믿어야 한다.

 '이러한 고통이 내게 주어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고통을 극복한다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육아 초보 시절의 막막함을 통과해냈듯이, 반짝 육아 안정기를 누려봤듯이, 지금의 이 기약 없는 날들의 끝도 반드시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육아를 하면서 만든 근육과 지혜를 발휘할 때가 지금이라고 여기면 되는 거다.

밖을 나오니 그냥 스쳐갔던 일상들이 어떤 의미를 지닌 채로 다시 그려진다. 내 아이의 행동들이 나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내가 지금을 뚫고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지금 힘들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답은 내가 찾아야 함을 잘 알고 있다.

나도 내 안의 야광 샌들을 찾아 용기를 내어보기로 했다.

함께 할 수 있는 일상을 감사함은 물론, 남의 손 빌리지 않고 내 손으로 내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엄마의 본분을 다하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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