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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로나 Nov 09. 2020

엄마! 나 오늘은 혼자 놀았어!

나의 내면 아이야! 움찔했니?

'엄마! 난 친구들이랑 노는 것도 좋지만, 혼자 노는 것도 재밌어.'


'왜 혼자 놀았는데?'


'내가 만들고 싶은 게 있는데 같이 하면 망가지니까, 근데 다 만들고 나서 같이 놀았어.'


어느 날 첫째 아이가 혼자 놀았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순간 살짝 당황 아니 가슴이 덜컹했지만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뭐... 아이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했고, 어린이집 시절부터 유치원으로 넘어오면서까지 한 번도 등원을 거부하거나 불만을 말했던 적이 없던 아이라 크게 마음 쓰지 말자고 넘겼다.  


넘긴 줄 알았는데, 나는 또 생각의 연결 고리를 이어나가고 있는 게 아닌가!!!!

오히려 아무런 말을 안 하는 게 더 안 좋은 거 아닐까?

구체적으로 물어봤어야 하나?

폭풍 검색해볼까? 혼자 노는 아이... 사회성... 6세 아이 친구....


그러다 며칠 뒤에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서도 "OO 이가 가끔 혼자 노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러다가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잘 참여하면서 지낸다고 괜찮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셔서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


그리고 아이에게 혼자 노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아이의 성향을 인정하고 넘어간 건 정말 잘했다고 셀프 칭찬 좀 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나와는 성향이 다른 아이라는 것에. 어린 시절의 나는 절대 저런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지 않았었을 텐데 말이다.




아이는 요즘 하원하고 나면 곧장 놀이터로 달려간다.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다나 뭐라나.

벌써 친구와의 약속이 중요한 나이가 되어버린 걸까?

그런 모습을 볼 때면 흐뭇하기도 하고 뭔가 가슴이 허전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내 안의 질척거림이 꿈틀거리는 듯하다.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흑.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친구랑 잘 어울리는지, 어떤 성향을 보이는지 모든 것이 엄마의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겉으로는 세상 인자한 표정으로 나의 아이와 다른 아이들에게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 속이 부글부글 끓는 일들도 자주 일어난다.


어느 날은 아이 친구가 자꾸 우리 아이의 손을 잡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만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잘 노는 것 같았는데, 이내 우리 아이가 흥미를 보이지 않자, 그 친구는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거다.

차라리 잘 됐다 싶기도 했고, 똑 부러지게 거절을 하지 않은 아이가 또 불만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가는 길에 아이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랑 같이 노는 것도 좋은데, 놀다가 oo 이가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친구에게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거 하고 같이 놀자>'라고 말해도 돼.


아이는 잘 알아듣는 것 같았고, 친구가 오늘은 자기랑 노는 것이 너무 좋아서 자꾸 내 손을 잡고 다녔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방금 전까지 옹졸한 시선으로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던 내 마음은 아이의 배려심이 담긴 발언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으이그.




사실 몇 년 전 어린이집을 다닐 때 첫째가 친구에게 무조건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서 선생님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아이가 좋다 싫다 표현을 잘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을 때도 그냥 그게 우리 아이의 성향이려니 믿고 넘겼다. 왜냐하면 집에서는 항상 본인의 의사를 잘 표현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굳이 문제 삼지 말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던 건 나의 내면 아이다.

혼자 놀았다고 말하는 아이의 말을 듣고 가슴이 덜컹한 건 나의 내면 아이다.

아직도 다 자라지 못한 그때의 그 아이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움찔했던 거였다.


나는 나고, 아이는 아이라는 독립적인 개체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엄마는 언제 어디서든 생각이 자유롭지 못해 아이를 키우는 내내 안절부절, 우왕좌왕 난리 법석이라는 뻔한 전개를 알면서도 나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 엄마인가 보다.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다. 나의 마음이 평온한 날엔 특히 더 아무 문제가 없다. 

지금 6살이 된 아이는 엄마의 말을 아주 잘 이해하고, 본인의 생각이랑 이유도 나름 타당하게 말해주는 편이라 얼마나 기특하고 감사한 지 모른다.


그날 이후로 아이가 놀이터에서 자기표현을 확실하게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친구에게도 내가 하고 싶은 놀이도 하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친구가 동의하지 않아도 실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본인의 생각대로 놀이를 하는 모습에 일희일비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이가 친구를 사귀고 같이 노는 것에 대해 부모가 얼마나,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해 늘 고민이기도 하지만, 난 크게 마음 쓰지 않고 항상 티 나지 않게, 부담스럽지 않게 뒤에서 지켜봐 주기로 했다.

앞으로 잘 될지는 진짜 모르겠다. 허허.


언제나 엄마가 든든하게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걸로 사랑 울타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면, 어디서든 잘 어울릴(엄마에겐 부족했던) 그 사회성이라는 것이 발달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말이다.


마사 하이네만 피퍼의 <스마트 러브>에서는 친구 사귀기와 부모의 역할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신뢰와 친밀감을 발전시켜 온 아이들은 친구 때문에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부모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다. 친구와의 약속이 깨지더라도, 부모가 다정하게 아이 말에 귀 기울이며 함께 놀아 준다면 아이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스마트 러브, p.292>


항상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흔히들 말하는 인성교육, 가정교육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아이가 큰 사회로 나가기 전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신뢰감을 형성하고 부모가 자신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서 타인과의 관계도 잘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는 엄마와 사회에 나가기 전에 리허설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야지. 사랑과 신뢰가 가득한 무대에서 연습하고 자신감을 갖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도 참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아이는 너무나 빨리 자라고 있다. 그런데 나의 내면 아이는 왜 이리도 더디게 자라는 걸까...

그래서 아이 키울 생각만 하지 말라고 하는가 보다. 어떤 부모로 클 건지도 생각해야 그게 바로 진정한 육아의 본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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