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로나 Mar 15. 2021

내 글은 쓰레기여도, 글을 쓰는 나는 쓰레기가 아니다.


'글감 목록을 한 번 열어볼까?'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적어두었던 글감 목록을 읽다가 어쩜 이렇게 하나도 쓸 게 없지?라는 생각에 어이가 없다.ㅋㅋ

글감을 찾는 일은 늘 어렵다. 어렵다기보다 내 안에 검열관이 자꾸 '이건 안돼. 이걸 쓴다고? 도대체 왜?'라면서 나를 뒤흔들어 놓는 게 견딜 수가 없.


황금 같은 새벽 시간은 보란 듯이 빠르게 흐르고 있는데, 내 마음은 초조하다 못해 조금씩 약이 오른다. 쓴다는 것은 말이지... 이렇게도 엄청난 저항이 내 머릿속에 난입해서 그냥 나를 매일 이렇게 시험하는구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던가.

이대로 내 안의 검열관에게 또다시 1패를 기록하고 싶지 않기에 나도 '그래? 그래도 난 쓸 건데?'라고 맞받아친다.


어차피 공들여서 써도 난 아마추어이고, 떠오르는 내용들 하나하나 곱씹어가며 정성을 들여도 아마추어인 건 변하지 않는다.

'그럼 계속 이렇게 쓸 거야?'

' 아니! 그건 모르지. 아직 덜 찬 거야. 그게 뭐든. 실력이든. 마음가짐이든. 뭔가 들어차 있어야 뚫고 나오지 않겠냐고. 그래서 우선 열심히 채워보려고!'


김연수 작가님의 <시절 일기>에서 이런 나를 위로해 줄 만한 반가운 문장을 만났다.


그렇게 자주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시를 쓰고 있었다.

시는 형편없었지만, 시를 쓰는 나는 근사했다. (p.15)


아. 역시 나라는 사람은 절대 생각하지 못한 접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내 글에만 집착하고 있었던 거였다. 나아지지 않는 글, 맘에 들지 않는 글에만 생각을 집중하고 있었으니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과 그 시간들이 그저 고통스럽게 느껴졌을 수밖에.....


그러니 이젠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써보겠다고 앉아있는 '나'에게로 시선을 돌려야 하겠다. 애쓰고 있는 나를 더 응원해 주고 토닥여주고 포기하지 않게 지켜줘야 할 타이밍인 것이다.


어제 알라딘에서 신간 목록을 보다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에 대한 한 줄 평들을 읽었는데, 'sns에서나 어울릴법한 글들이라 실망스러웠다, 이전 작품도 비슷했었는데 이젠 작가 브랜드 빨(?)인 것 같다', 라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많이 놀랐다.


그리고 얼마 전 브런치 작가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이 '다 전문가들이 쓴 내용들이었다, 출판사가 원하는 글들은 다 정해져 있나 보다....'라는 글을 볼 때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내가 쓴 글의 발행 버튼을 누르기가 점점 더 두려워지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하루에도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글의 홍수 속에서 정말 제대로 잘 쓴 글은 무엇일까?

그런 글은 누가 쓰는 것이며, 독자는 어떤 글을 찾아서 읽어야 하는 것이 맞을까에 대한 끝없는 생각의 고리들이 또다시 풀어진다.


어떤 글은 가볍다, 단순히 일기 형식이다, 그런 글은 나도 쓰겠다....라고 정말 쉽게들 말하지만, 사실 어렵고 본질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책들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활자보다 이미지에 더 눈이 가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글보다 물건 구입한 이야기, 먹는 이야기들의 조회 수가 더 높은 것이 현실 아닌가.


오늘의 내 글도 산으로 가는 것 같지만. 어쨌든 이렇게 앉아서 이만큼 써 내려간 나는 절대 쓰레기가 아니다.

맘에 들지 않는 오늘의 내 글은 그냥 글일 뿐이고, 저항에 울고불고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나는 누가 뭐래도 쓰는 사람이다.


언젠가는 내 글과 나라는 사람 모두 근사 해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작가의 이전글 자연과 멀어지지 않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