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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로나 Jun 21. 2021

매일 해결해야 하는 사람, 엄마

© Clker-Free-Vector-Images, 출처 Pixabay


일어나서 배고프다는 아이들에게 접시에 수박을 담아줬다.

아이들이 깨기 전에 책 읽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깨니 급 졸음이 몰려왔다.

수박 먹는 동안 잠깐 눈 좀 붙이려고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채민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으앙 너무 아파”

“어디가? 왜?”

“이빨이 아파서 못 먹겠어”

 

채민이 치아가 흔들리고 있었는데 아직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두고 있던 참이었다.

토요일 저녁부터 제법 흔들리길래 월요일에 치과에 가자고 했었다.

수박을 베어 물다가 꽤 아팠나 보다.

다니던 치과는 버스를 타고 나가야 되는데, 정신없는 아침 시간에 순간 판단이 서질 않았다. 다민이를 먼저 등원시키고 둘이 버스를 타고 나갈까. 어쩔까 하다가. 발치만 하는 거니 동네 치과에 다녀와도 될 듯했다.

 

아이들 준비시키고 병원 오픈 시간에 맞춰 갔다.

“예약제라 한참 기다리셔야 해요”

“아 그런가요? 대략 얼마나 걸리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렵고요. 아니면 오후에 유치원 끝나고 오시던지요”

“아이가 이가 많이 흔들려서 먹지를 못해서요.”

“그럼 우선 접수하고 앉아 계세요. 중간에 진료 차례가 올 수도 있으니까요”

“아.. 네 알겠습니다”

 

‘어제 남편한테 손으로 빼 달라고 할 걸’

‘어제라도 많이 흔들린다고 이야기해주지’

‘아.. 왜 생각을 못하고 있었을까.’

대기 의자에 앉아 또 혼자 자책하고 있다. 지금 발치에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을.

 

“채민이 들어오세요”

다행히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발치를 했고, 늦지 않게 등원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뭔가 큰 일 하나 해결한 기분이다.

아직도 아이들을 데리고 어딘가를 나서는 길이 능숙하지가 않다.

아기였을 때는 더 많은 짐을 짊어지고도 다녔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얼마나 나아진 요즘이냐고 감사할 법도 하지만.

육아라는 세계에서는, 엄마라는 이름을 달고 사는 한, 쉽게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


나의 문제가 아닌 타인의 문제 해결을 위해 쓰는 시간이 더 많다.

가족을 위해 못할 게 뭐가 있겠냐 싶겠지만. 사실 무슨 일이든 쌓이고 반복되면 번아웃이 온다.

특히 엄마가 되고 나니 내 일상의 경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 경계의 구분은 나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가족을 챙겨야 하지만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챙겨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남편, 아이들 챙기고, 딸, 며느리 역할에 허우적거리다 보면 사실 남는 게 없다.

그제야 나도 내 삶을 찾겠다고 선언하면 늦을 뿐이다.


평소에 나 스스로 나를 잘 챙겨야 하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없다, 이제 와서 뭐 하냐...라는 말은 진짜 핑계다.

내 경험으로 봐도 시간은.... 정말 쓰기 나름이다.


상반기에 읽은 책이 진짜 몇 권 되지 않는다. 이것만 봐도 나의 일상이 몇 개월 사이에 흐트러졌다는 확실한 증거다. 난 다독가는 아니지만 읽은 책이 일상의 집중도와 연결 지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나다.


둘째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한 권의 육아서를 만나고 조금씩 습관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TV를 줄이고, 쇼핑을 줄이고, 살림을 줄이고, 저축을 했다.

외롭고 무기력한 시간들을 책, 필사로 채워나갔다.

내 책을 읽고 아이들 책을 읽어줬다.

사람을 만나 채우려 하지 않았다. 솔직히 사람을 만날 자신이 없었다.

그냥 혼자 있는 시간을 견뎌보려 노력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변하고 있었다.

초조하고 불안했지만 어차피 난 나의 그릇 사이즈를 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몇 년 동안 습관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훈련하고 있는 중이다.


무기력하고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도 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도 큰일은 나지 않는다.

다만 나 자신이 뭔가 마음에 걸리고 찝찝하고.... 하지만 움직이진 않고..ㅋㅋ 그렇게 반복될 뿐이다.


육아도 살림도 독서도 걷기도... 다 귀찮고 싫을 때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매일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는 게 인생인데.

매번 어떻게 하지?, 언제 다하지?라고 겁부터 먹으면 될 것도 안 되는 적이 많았다.


이제는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내 기분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눈 앞에 놓인 일이 버거우면 그 해결책보다 우선 내 감정 먼저 다독이고 해결하기로 했다.


매일 내 감정을 돌보고 해결하는 사람, 그런 엄마가 되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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