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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로나 Aug 20. 2021

엄마가 몰래 책을 버리는 이유

"엄마! 이거 왜 버리려고?"


둘째가 분리수거 통에서 그림책들을 들고 온다.


"어? 그게 왜 거기 들어갔지? 엄마가 잘못 넣었나 봐. 미안"

"엄마! 이거 절대 버리지 마요. 알았지?"


책에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알았지?

그림책 몇 권을 재활용 분리수거하는 날에 버리려고 넣어두었었다. 몇 년 전, 어린이집에서 받아 온 책들이다. 이제 자주 보지 않고, 나이와도 맞지 않기에 버려야지 했던 참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는 어릴 때 봤던 책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 그 이후로는 아이들 눈을 피해 조금씩 책을 정리하고는 있다. 버릴 책을 꺼내서 한 두장 읽다 보면 아이에게 읽어주던 그 시간이 떠올라서 느닷없는 추억 여행도 한다. 사두고 자주 꺼내지 않은 책들을 이리저리 다시 제자리를 찾아주기도 한다. 아이와 나와 연결고리인 책을 버리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그래도 어쩌랴.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순식간에 불어나는 집 안 물건들을 모른 척할 수가 없는 게 주부의 마음이니, 추억보다 현실을 택한다.



자기 전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지치는 날에는 유독 읽어주기가 싫다. 그런 마음으로는 뭐든 다 눈에 거슬린다.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대충 읽어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아이들이다. 가져온 책들 사이로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이 들어있다. 갑자기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 한 마디를 하고 만다.


"아직도 아기야? 왜 이걸 읽어달라고 해? 이젠 이런 책 좀 그만 읽자. 어?"


아이들은 대답 없이 엄마가 읽어 주는 다음을 기다리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가 순간 울컥했다. 페이지마다 적혀있는 단어들.

한참 첫째의 한글을 가르쳐주려고 책을 읽을 때마다 네임펜으로 글자를 쓰면서 읽었다. 순간 그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처럼 아이와 붙어서 책을 읽고 누워서 잠들던 소소한 일상.

남들처럼 가, 나, 다를 빨리 배우지 못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여러 번 아이를 울리기도 했었다. 결국 선택한 방법이 책을 읽어줄 때마다 단어를 써서 읽어주는 것이었다. 써주는 단어마다 잘 따라 읽는 아이가 귀엽고 대견하기만 했는데...


글을 잘 읽는 7살이 된 지금도 잠들기 전 책을 가져오는 그 마음을 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아이는 그 자체로 사랑이다. 아직 글자를 모르는 동생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건 감동이다.

 

엄마에게 책을 가져오지 않을 그때가 멀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엄마와 언니랑 같이 읽었던 책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둘째의 마음도 안다.


알기에 오늘은 오랜만에 책을 정리하려고 한다.

비워진 책장에는 요즘 아이들이 관심 있어하는 책들로 채울 거다.

지난 시간들이 나를 이끌어왔듯이,

지금도, 오늘도, 언젠가는 소중한 추억이 될 테니까.

새로운 추억들을 더 많이 만들어가야지.


예전의 너희가 소중한만큼 지금의 너희도 눈부시니까♡


훌쩍 자라는 아이의 속도만큼 우리만의 기억을 만들 자리도 넓혀가는 중이라고 믿는다.


오늘 재활용 분리수거 차량이 오는 날이다.

서둘러서 책장을 좀 훑어봐야겠다.


어느 여행지에서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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