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몇 권을 재활용 분리수거하는 날에 버리려고 넣어두었었다. 몇 년 전, 어린이집에서 받아 온 책들이다. 이제 자주 보지 않고, 나이와도 맞지 않기에 버려야지 했던 참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는 어릴 때 봤던 책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 그 이후로는 아이들 눈을 피해 조금씩 책을 정리하고는 있다. 버릴 책을 꺼내서 한 두장 읽다 보면 아이에게 읽어주던 그 시간이 떠올라서 느닷없는 추억 여행도 한다. 사두고 자주 꺼내지 않은 책들을 이리저리 다시 제자리를 찾아주기도 한다. 아이와 나와 연결고리인 책을 버리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그래도 어쩌랴.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순식간에 불어나는 집 안 물건들을 모른 척할 수가 없는 게 주부의 마음이니, 추억보다 현실을 택한다.
자기 전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지치는 날에는 유독 읽어주기가 싫다. 그런 마음으로는 뭐든 다 눈에 거슬린다.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대충 읽어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아이들이다. 가져온 책들 사이로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이 들어있다. 갑자기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 한 마디를 하고 만다.
"아직도 아기야? 왜 이걸 읽어달라고 해? 이젠 이런 책 좀 그만 읽자. 어?"
아이들은 대답 없이 엄마가 읽어 주는 다음을 기다리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가 순간 울컥했다. 페이지마다 적혀있는 단어들.
한참 첫째의 한글을 가르쳐주려고 책을 읽을 때마다 네임펜으로 글자를 쓰면서 읽었다. 순간 그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처럼 아이와 붙어서 책을 읽고 누워서 잠들던 소소한 일상.
남들처럼 가, 나, 다를 빨리 배우지 못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여러 번 아이를 울리기도 했었다. 결국 선택한 방법이 책을 읽어줄 때마다 단어를 써서 읽어주는 것이었다. 써주는 단어마다 잘 따라 읽는 아이가 귀엽고 대견하기만 했는데...
글을 잘 읽는 7살이 된 지금도 잠들기 전 책을 가져오는 그 마음을 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아이는 그 자체로 사랑이다. 아직 글자를 모르는 동생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건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