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고되고 찬란한 이름, 청춘
나이 듦에 관한 짧은 단상
by
지구별여행자
Dec 10. 2020
한낮의 뜨거운 여름에도 푸른 나무는 제 모습 그대로의 색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람에도 흔들이지 않고,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늘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늘 그렇게 서있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인간이라서. 그렇게 아직도 여물어가는 청춘이라서 때로는 아프다.
청춘을 나무에 비유하자면 푸르름인데, 우리는 이 푸르름을 그 순수함을 때로는 잊고 사는 것 같다.
처음, 글을 쓰겠다고 무턱대고 방송작가 지원을 했을 때
주변에서는 버텨내기 힘들 거라고 했었다.
스물네 살. 그때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그 겁 없던 청춘의 용기가 그 시기를 잘 견디고, 버텨낼 수 있게 해 주었던 동기부여가 됐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이라는 나는 이 말이 그렇게 싫었다.
잘되면 다 기성세대의 공으로 돌아가고 못하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라며 시작되는
그 식상한 문장이 그렇게도 속을 울렁거리게 했었다.
나는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청춘의 긴 터널을 그렇게 빠져나오고 있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나는 버텨낼 수 있을 거라는 오기는 서서히 그곳에서 내 자리를 찾아주었고, 나는 안정되어가고 있었다.
청춘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은 무한했다.
실수를 해도, 조금 잘못하는 일이 있어도 청춘이라는
단어는
이제 시작이라는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이라는
면죄부를 만들어주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청춘이 주는 고단함도 있었다.
조금 어린 사람이, 조금 젊은 너희들이 하는 게 마땅하다는 편견.
그 속에서 우리는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싸우며 버텨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했고, 그렇게 살아남은 우리들만이 청춘이라는
찬란한 타이틀에 줄을 설 수 있었다.
그 시기를 지나오니, 지금의 청춘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가 고단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갈수록 내려놔야 하고, 포기해야 하고, 말을 아껴야 하는 순간들이 많다.
그런 삶에 융화되기 위해 우리와 같은 삶에 똑같이 녹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씁쓸해지기도 한다.
다음 세대만은 달랐으면 하는 바람들이 무참히 깨어지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왠지 허무해진다.
꿈을 좇을 것이냐, 돈을 좇을 것이냐의 기로에 서서 많은 갈등을 하게 되는 청춘의 뒷모습.
삼포세대를 지나오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가 감히 청춘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우리 부모님 세대가 살아온 그때와 다르게 우리의 청춘들이 누려보지 못하는 삶이 가끔씩 아프고
안타깝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살아서인지, 돈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탓인지
구분 짓기 애매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까운 이름, 청춘.
하지만, 꿈을 꿀 수 있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 청춘이기에 희망을 얘기해본다.
아프니까 청춘이지만, 그만큼 찬란히 빛날 수 있는 시기.
그러니까 청춘이다.
keyword
사랑
이별
감성에세이
13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지구별여행자
직업
방송작가
지구에 잠시 여행을 왔어요. 언젠가는 지구를 떠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씁니다.
팔로워
49
제안하기
팔로우
작가의 이전글
진심이 부담이 되는 순간
욕심으로 얼룩졌던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