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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냄새
사계절이어서 다행이야
by
지구별여행자
Dec 17. 2020
겨울이 막 끝나갈 무렵, 아직은 차가운 듯한데 봄의 냄새가 그 안에 살아 있다.
겨우내 웅크린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시기이니, 모든 일들이 다 잘 될 것만 같은 기운이 돌기도 한다.
봄이 주는 가볍지만 새로운 공기들에 마음마저 무슨 일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생기는 이유겠지. 봄이 끝나갈 무렵, 공기가 조금씩 무거워진다. 여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여름은 습하고 덥지만 여름에만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있다.
나는 여름날, 비가 오고 난 뒤 나무 냄새가 그렇게 좋다.
그 냄새는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는 여름만이 뿜어낼 수 있는 특유의 향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냄새가 그리워지면 무작정 걷는다. 걷다 보면 나무가 우거진 숲 어디쯤에서 발을 멈추게 만드는 그 냄새가 난다. 마음이 놓인다. 어떤 일이든, 어떤 사람들이든 다 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하는 마법의 냄새다.
여름이 끝날 즈음, 찬 바람이 불면 여기저기 산들이 예쁘게 옷을 갈아입은 가을이 온다.
가을이면, 또
그즈음의 냄새가 있다.
짙어진 가을에 쪄진 밤을 탁 반으로 잘랐을 때 올라오는
고소한 냄새가 떨어지는 낙엽에서도 나는 것 같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그곳이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이방인들이 이런 추억이 깃든 냄새에 민감해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타지에서의 외로움에 파묻혀 잃어가는 마음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가을에서 막 겨울로 넘어갈 무렵에 꼭 한바탕 비가 쏟아진다.
그러고 나면 여지없이 날씨가, 공기가 확 바뀌어버린다.
가을이 겨울에게 바통터치라도 한 듯 차가운 공기가 뼛속까지 전해져 온다.
지금이 딱 그렇다. 달력은 한 장이 남았고
계절이 바뀌고 차가워진 공기에 올해도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들은 모두 같아지는 시기.
계절이 딱 사계절이어서 다행이다.
계절의 고비고비마다, 계절의 순간순간마다
그 계절마다의 냄새에 추억을 담아본다.
아득하고 멀리, 지나간 계절에게는
씩씩하게 손을 흔들어주자. 안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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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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