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는 마디에 마디를 올려가며 곧고 높아진다. 우리는 태어나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교육이라는 것을 받으면서부터 경험과 지식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연륜이라는 것이 더해져 단단해지고 스스로에게 당당해지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실수를 좀 했을때에는 넘어질 수 있지만, 무너지지는 말자는 다짐들로 다시 일어서기도 하면서 그렇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견디며 이어가는 것이다.
2012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8년전.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일찍이었을 무렵 나도 내가 선택한 삶이 이렇게 흘러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풍족하게 시작하지는 못해도 내가 선택한 길이라고 생각했기때문에 어떻게든 살아낼 수 있을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뱃속의 아이와 내가 살기 위해서는 아이 아빠와의 헤어짐이 최선의 선택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나는 내 스스로에게 정당화시키며 이제는 아이를 위해 감당할 수 있는 삶 만을 살아야 겠다는 다짐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나는 싱글맘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빠의 부재를 느끼겠구나 싶을 즈음인데도 아이는 좀처럼 아빠에 대해 질문을 하는법이 없었다. 나도 아이가 어느정도 이해를 할 수 있을 때, 아빠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해 줄 날이 있겠지 정도로 묻어둔 채 살아오고 있다. 아홉살, 아직 어린 나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는 어느 때는 어른보다 더 깊은 이해심으로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할 때가 종종 있다. 아이답게, 아홉살답게 그렇게 성장하고 있는 반면 가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해질 때가 있다. 이제는 제법 친구처럼 대화가 오고 갈 만큼 자라서 얼마나 든든한지 새삼 지나온 시간들이 눈 녹듯 녹아버리는 날들도 많다.
이쯤되니, 이제는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물론 여느 부모들은 아이에게 학교수업을 따라가게 하기 위한 성적에 중점이 되어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살아가다보면 성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쯤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기도 하니까.
아직은 성적이 행복을 정하는 우선순위인 세상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이에게 단단하게 혹은 당당하게 세상을 맞서는 마음을 갖고 자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너무 감성적인 것이 아니냐는 주변 사람들의 지적에도 나는 그렇게 아이에게 올곧은 마음을 갖게 해 주고 싶다. 어쩌면 그런 마음이 아이가 세상과 부딪혀 주저앉아야 할 일이 생길 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요즘 TV를 보면 오디션프로그램이 많은데 얼마전 시청한 프로그램을 보고 마음이 좀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재능을 펼쳐주게 하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좋은 기회이지만, 그 자리가 온전히 아이의 재능을 위한 자리인 것인지 부모의 욕심은 아닐지 씁쓸하다는 생각이 드는건 나만 그랬을까?
어린 나이부터 본인의 재능이 눈에 띄어 그렇게 펼쳐가면 더 없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아이가 그 무대 하나를 준비하면서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캐릭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쓰럽기까지 했다. 재능은 물론 좋은 유산임에 틀림 없지만 아이 스스로 아이가 원할 때 펼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생각 차이겠지만 나는 자유로우면서도 본인의 적성을 찾아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가며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아이에게도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숙제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