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의 숫자가 갖는 무게

또 한살을 더해야하니까

by 지구별여행자

해가 바뀌고 떡국을 한그릇 먹으면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했다. 그 말이 싫은건지, 나이 먹는게 싫은건지

떡국 먹는것이 내키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마흔의 나이에 서보니 그까짓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에도 왜 그렇게 한 살이라도 덜 먹는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어리다는 나이 안에서는 어떤 문제의 실수도 포용될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한살, 한 살 더해지면서 우리는 나이 값을 해야한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그 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을 때엔 그저 행동을 똑바로 하라는 의미인가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나이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나무는 나이를 먹으면서 나이테라는 것을 만드는데 나이테가 많아질 수록 나무는 더 단단하고 튼튼해진다고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것, 늙음이라는 것이 결코 젊음이 결여되는 것이 아닌, 젊음이라는 것을 감싸 안으면서 나이테가 커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성숙' 이라는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죽음이 언제나 곁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는 시기가 되기도 할 테고, 다른 또 누군가에게는 타인이 아닌 모든 인생의 결정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간다고 잃는것만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음이 지나가고 있음만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그 안에 잃는것과 다른 얻는것의 의미도 되새길 필요는 있을 것이다.

'얻는 것'의 다른 말은 나이가 들어가며 잃는 것이 가져다 주는 성장일 것이다. 식물들은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위로 솟구친다. 이렇게 성장은 깊어지기도 하고 커가기도 하면서 우리의 인생에 녹아 들고 있는 것이다.


이타적인 마음 또한 이런 성장에서 가져다 주는 마음일 것이다. 나 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 할 수 있고 내가 조금 양보하고 희생해서 상대방이 편안한 쪽으로 움직여 줄 수도 있는것 말이다.

별거 아닌 일이겠지만, 어떠한 문제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하고 생각하고 말 할 수있는 것도 나이가 가져다 주는 나침반 같은 것이다.


누구나 나와 같을 수는 없다. 내가 상대방이 될 수도 상대방이 내가 될 수도 없다.

하지만 한발 물러서서 바라다보면 내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래, 그럴수도 있었겠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 어쩌면 우리가 영원히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면 더불어서 어울려서 살아야 하는데 그럴때 가져야 하는 나이가 주는 힘은 아닐까 생각한다.


마흔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제 시작이고, 누군가에게는 벌써인 나이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나이가 주는 성장을 함께 견뎌가면서 또 한 살이 더해지고 싶다.

무의미한 나이 들어감은 없다. 각자가 가진 삶의 무게 자체가 나이가 주는 더 큰 무게감이라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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