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낳은 말의 한계

결국엔내마음편하자고

by 지구별여행자

반복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었겠다. 배려가 낳은 말이라는 것이 어쩌면 결국엔 상대방의 입장이 아닌 내 입장에서 내 마음 편해지고자 억지로 끼워 맞춰지는 퍼즐같은 것일지도.

불편함을 호소할때, 그때는 이미 어떤 말도 그 말의 힘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이해시켜보려는

이기심이 상대방과 나 사이에 또 벽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는데, 내가 쏟아내는 말들에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늘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너는 아마 너의 그 입 때문에 망하게 될거야. 봐봐.


이 말만큼 그 상황을 온전히 정리할 수 있었던 표현이 있었을까. 이해라는 것이, 배려라는 것이 때로는 이렇게

옳지 않음의 답이 된 채 돌아온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나는 내 입장을 고수 하며 상대방의 생각이 틀린거라고 주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말에는 내가 지금 이러는건 다 당신을 위해서였다는 핑계에 불과하다는걸 이제서야 알게된다는 것이 안타깝다.


너는 매사가 부정적이야.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너는 모르더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지금의 내 상황을 환경을 그리고 그에 대한 마음 상태를 순간순간 감당하기 버거울 때가 있었다는 뜻이었는데 그런 나의 표현들이, 표정이나 말투나 의미들이 그저 다 싫다고 안좋은 상황만 온다고 비관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져서 결국 나를 일으켜 세워주려는 상대방마저 기운 빠지게 하는 일이었음을 알게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변명같이 느껴질 것이다. 어쩌면 반복되는 이런 상황들에 진저리가 쳐 질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양쪽으로 팔을 쭉 펼쳐서 좁혀지고 또 좁혀가며 기회라는 것을 많이 줬다고 늘 이야기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한번의 기회 기회마다 모든 걸 잊은채 같은 실수나 상황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힘이들어요. 혼자서 헤쳐나가려니 힘이들었어요.


차라리,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그러니 내가 어떤 모습이든 그려려니 하고 이해해주세요. 힘들거라는거 알지만 내가 어떻게든 이겨내 볼테니 흘러가는대로 그냥 옆에만 있어주세요. 라고 빙빙 돌리지말고 얘길 할걸 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지금의 후회일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상황을 상대방도 이해를 할 수는 없을 거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렇게 조금 더 대화의 폭이 깊었더라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한계를 갖지는 않아도 됐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건 어쩔 수가 없다. 나는 나의 말들이, 마음들이 내가 함께 하고 있는 사람에게 혹여나 부담이나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늘상 들었다. 그냥 이 마음이 이상하게 내가 의도하지 않게 힘든 순간에 내가 왠지 민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오는 어쩌면 의도치 않은 오지랖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는 식상한 마음이 당장 마음이 상해 있는 상대방에게는 그냥 형식적인 미안하다는 말로 들려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겠지만 나의 말로 인한 서운함을 나도 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들여다 보기 전에 나는 꾸역꾸역 내 마음이 이랬다는 말 같지도 않은 내 입장에서의 배려가 상처가 될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무엇이든 어떤 순간이든 함께하자고 하는 말들이 무색하게 나는 어쩌면 상대방이 열고 있는 마음을 짓밟은 것은 아닌지 어긋났던 마음으로 상처를 주게된 말들에 미안함을 더한다.


어쩌면 이런 내 비겁한 변명들이 모두 전해지기에도 이미 상대방과 나 사이의 벽이 두꺼워져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느 만큼에서는 지금의 시간이 말이 주는 배려가 아닌 내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길 바라본다.


기회를 주면 뭐해. 기회를 주는 만큼 말로 다 부숴버리는데.

믿고 기다려준 만큼의 의미도 없이 나는 지난날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 미안한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기만 해도 나는 바랄게 없을것 같다. 어긋난 마음이, 어긋난 생각이 이 오해들이 조금씩 옅어져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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