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아미안해우리가바꿀게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방송이 되기 이전에 이미 지금 떠들썩한 정인이라는 아이의 사건을 기사를 통해 본 적이 있었다. 새해 첫 시작부터 한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으로 얼룩진 소식들이 마음이 아프다.
아이를 키우는 같은 엄마의 입장을 떠나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무참히 짓밟힌 아이의 아픔 앞에 무어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깊은 미안함이 드는건 비단 아이의 죽음이 방송으로 알려져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이의 죽음은 이미 비인격장애를 가진 양부모와의 인연을 떠나서 나는 어쩐지 그 아이의 생모에게까지 화살이 꽂힌다.
열달이라는 시간동안 아이를 품에 품고, 낳기까지 아이과 교감했던 아이의 엄마 상황이야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랬을까 싶지만 아이를 키워내는 어려움이 아이를 포기하고 난 뒤의 마음의 힘듦에 비교할 수 있을까 싶다.
정인이라는 아이의 이름을 지어줄 마음까지 있었다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볼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뒤늦은 안타까움이 드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인것 같다.
16개월이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고 혼자 뒤뚱거리며 걷는 연습을 한창 할 시기인데, 사랑을 받으려고 온갖 예쁜 짓은 다 하는 생애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운 순간이었을텐데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아이한테 그렇게 무지막지한 공격을 할 수 있었는지 묻고 싶다.
심지어 양모라는 여자는 자신이 낳은 아이까지 같이 키우고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내 친 자식 보듯 그아이도 가엽게 여겼다면 그럴 수가 있었을까?
우리가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이 언제나 늘 한결같이 변함없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닐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자녀가 미운행동을 하면 밉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는 만감이 교차하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어가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과 폭력은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태어나 처음인 부모라는 역할을 하면서 그 자리의 무게만큼 배워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기분에 따라 아이의 성장은 좌우 될 수 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비로소 행복해진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말인 것 같다. 엄마가 불행하면 아이도 눈치를 살피며 아이 스스로의 삻이, 마음이 불행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사랑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알지 못할 때 또, 어떻게 마음을 다루고 살아가야 하는지 내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지 막막해 질때가 있는 것이다. 모두가 부모의 역할은 처음이기때문에 완벽 할 수는 없다. 모자라지 않게 채워주고자 배워가는 길일 뿐이다.
외양간은 왜 미리 고칠 수 없었던 것일까. 의문이 든다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인이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은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는데, 만들어진 법이 제도가 그 기회를 시간을 빼앗아 갔는지도 모른다. 담당 소아과 의사도 아동복지센터도 어린이집 선생님도 이제와서 하는 말들이 다 그저 변명에 불과할 뿐이지 이미 세상을 떠난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말들은 아닐것이다.
지금으로써 우리는 제2, 제3의 정인이라는 아이가 나오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시간들이 어른도 참기 힘들었을거라는 정인이가 겪은 고통에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정인이가 다시는 똑같은 친구들이 나오지 않게 해 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 어린이집에서 찍힌 아이의 뒷 모습 사진이 자꾸 눈에 밟혔다.
아무 감정상태가 없는 모습으로 이미 내장기관이 모두 터져 감염이 된 상태에서 물 한모금 마시는 일 조차 어려웠을거라는 그 고통에도 울음 한번 토해내지 않은 그 어린 아기의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싶다.
무지한 어른들의 무책임함으로, 아무 힘 없는 아이를 스러지게 한 죄 값은 결코 우리가 단죄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정인이를 스쳐간 모든 어른들이 가해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가슴아픈 이야기.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많은 반성을 하게 되고 무거운 마음으로 미안한 감정이 든다.
부디, 그곳에서는 아픔없이 평온하기를. 너의 영혼이 편안하기를 기도한다. 아가.
그리고 반드시 네가 남겨준 숙제가 잘 이어지고 있는지 지켜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