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의 유년시절을 지나 나름대로는 정말 어렵게 20대의 홀로서기로 나는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지옥을.
가정폭력의 형태는 다양하다.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아버지라는 사람이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신체적인 폭력이 있고, 무관심속에 방임되어지는 폭력이 있고, 술의 힘을 빌려서 혹은 맨정신으로 퍼붓는 언어폭력이 있을테다.
그 중에서도 나는 우리 가족의 일원이었던 엄마, 두 동생들은 맨정신으로 새벽까지 모두를 잠도 재우지 않고
앉혀놓은 채 퍼붓던 언어폭력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에는 차라리 피터지게 맞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은 고문이라고 스스로 맞는 것이 낫다는 차선책을 생각했다고 지금도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그 지옥의 시간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고,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갖고는 일을 핑계로 아니, 일의 특성상 밤을 지세워야 하는 시간들이 많음이 감사했다.
간절히 원했더니 이루어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먹먹하다. 몸의 상처가 아니었다고 해서 없어지는 흉터가 아니라 너무나 긴 시간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상처다.
지금도 나는 비슷한 욕설이나 경상도말투, 갑자기 때리려는 타인의 몸짓에 흠칫 놀라곤 한다.
무뎌진다는 말도 나는 유년시절 이 시간들을 견디며 알게되었다. 정말 평생 살며 이런 말들을 또 들을 수 있을까 싶은 욕설과 원망들이 가끔씩 환청처럼 들렸다. 그렇게 나는 완전히 벗어나고 싶어 결혼을 택했다.
그런데 결혼은 또 다른 올가미가 되었다. 전 남편 역시 부모의 사랑 속에 자라지 못한 결핍으로 그 사랑까지 요구를 해왔고, 일곱살 차이가 나는 나는 그 마음까지 온전히 채워주기란 역부족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상대방과 내가 어떤 관계이든 가는 마음이 있으면 오는 마음이 있어야 유지가 되는 것임에도 전 남편이라는 사람은 오는 마음만을 원했고,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이로 돌변해버리며 가장으로서의 책임에서도 벗어나고 싶어해 나는 태중의 아이를 품고 이별을 결심했다. 몸조리로 인해 이혼 서류정리는 미루던 중 아이에게 갑작스런 경기가 찾아왔고, 생후 4개월 만에 병원신세를 지며 경기의 원인을 찾았지만
흔이 있는 열경기가 아니라 의사들은 혹시라도 모를 최악의 순간도 염두를 해야 한다며 겁을 주기 시작했다.
어느날, 아침일찍 주치의가 아이의 아빠되시는 분한테 연락을 하라는거였다.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했다.
전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받지않아 문자를 남겼고 5분쯤 뒤 온 답장은 가관이었다.
" 그 아이가 내 아이인지 어떻게 아냐. 난 모르는 아이다. 알아서 해라"
예상했던 답이었을까. 나는 너무 담담했는데 주변의 가족들이 그를 죽여버려야 한다며 난리를 했다.
서울에 머물며 이혼서류 정리 절차를 밟았다. 출산 4개월 만에 마주하고 싶지않은 얼굴을 보게 되었다.
혼인신고를 한지 1년 3개월만의 일이다. 결혼 직후, 아이가 생겨 그 해 11월 출산을 하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출산했던 병원에서 집으로 퇴원이 아닌, 친정으로 퇴원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별을 했다.
아빠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아이는 올해의 나이 열살의 소녀가되었고, 이혼이라는 큰 변곡점을 겪은지도 10년이 채워졌다. 이혼 초반에는 그마저도 내 인생의 스크래치 같아 심적으로 많이 힘이 들었는데 커가는 아이를 보면서 그런 생각들이 사라져갔다.
유지했던 결혼생활이랄 것도 없이,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이 빨리감기로 진행되었다.
남들은 이혼을 하고도 후유증이 크다고 하던데, 오히려 나는 너무 홀가분했다. 시간을 되돌릴수야 없겠지만 차라리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지금 생각하면 이런 악연도 없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말의 의미를 요즘 많이 느끼는 중이다. 지나가는 모든 시간들은 다 이유가 있었을거라는 것도 스스로 인정하게 되면서 그 시간시간들안에서 최선을 다해보자고 다독인다. 갑작스러운 결혼과 이혼을 1년이라는 시간안에 겪으면서 친구들을 비롯해 모든 인연들과 나는 단절을 하게되었다.
치부라면 치부일수도 있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싫었고, 말을 걸어오는건 더 싫었던 지난 시간들 마저도 이렇게 글로 쓸 수 있는 지금 시간을 나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치유라는 것은 결국, 내 안의 내 마음과 싸우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나거나 그 자리에 머물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였다면 불가능 했을 시간들에 지금 내 옆에 있는 아이와 또 감사한 인연이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조심스러워 이야기 꺼내길 꺼려했던 나의 지난 시간도 지금이 아닌 시간이 더 지나가 주면서는 그저 내가 더 성장해 가는 과정이었을 거라고 믿어본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택했다는 10년 전의 선택에,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앞으로도 행복해 질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