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별여행자 Feb 18. 2021

산사람은살아진다더니  

영원할줄알았지 모두가 

2010년 한 여름, 그날 친구는 주말에 했던 소개팅 얘기를 점심 시간 내내 이어가고 있었다. 

방송국에서 알게 된 친구였는데 이 친구는 제작쪽이 아니었음에도 제작비 정산 등을 이유로 친해진 친구였다. 

지현이와는 그렇게 인연이 되었고, 동갑이라는 이유로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소개팅 얘기에 여념이 없던 지현이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어쩌면 얘가 결혼도 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 부모님이 소개시켜주신 사람이라 더 믿음이 가는것도 있어"

" 너 지난번에 만난 남자도 집안에서 연결해 준 사람이었다 알고있냐? "


나는 고작 한번의 만남으로 믿음을 운운하는 지현이의 모습이 마뜩지 않았던 것 같다. 


" 그래서 결혼을 하겠다는거야 지금? "

" 군인이라 직업도 안정적이고, 부모님도 같은 교회 다니셔서 잘 아시고 그래서 생각중 "

" 에효....나는 그 결혼 말리고 싶다....진짜...." 


양가 부모님이 같은 교회에서 알고 지내셨고, 지현이 아버지께서 군인이셨고, 소개팅을 한 사람도 군인이라고 하니 더구나 어머니께서 그 남자를 너무너무 좋아하신다고 하니 나는 뭐라고 말릴수도 없었다. 

햄버거 먹은 것인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만큼 그날 지현이는 본인의 얘기로 점심시간을 모두 빼앗았었다. 

그렇게 그 해 늦 가을, 속전속결로 결혼식을 올린 지현이는 남편을 따라 강원도 횡성으로 이사를 가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엊그제까지 점심을 늘 같이 먹던 친구가 갑자기 횡성으로 이사라니, 그것도 몇개월만에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다니 헐......!  하는 마음이었는데 그로부터 2년 뒤 지현이는 아들을 낳았고 나도 같은 해에 딸을 출산하게 되어 결혼은 다른 시기에 했지만 동갑내기 아이를 둔 엄마가 되면서 연락을 자주 했었다. 


내 상황이 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 혼자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도 지현이와는 쭉 연락을 이어갔었다. 

내가 아니라 지현이가 늘 연락을 먼저 해왔다. 지현이의 아들 준수가 그리고 우리 지우가 다섯살 무렵 지현이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고 동시에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청천벽력이었고 지현이는 아이를 포기하는게 어떠냐는 가족들과 의사의 만류에도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서 열달을 치료 없이 버티고 아이도 출산을 하게 되었다. 딸 아이를 낳고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이미 너무 많이 진행되어버린 암은 뼈와 다른 장기까지 전이되어 수술은 이미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했었다.  위로를 했어야 했는데 나는 화가 나서 어쩌려고 그러냐며 지현이한테 말을 곱게 하지 못했다. 


첫 아이를 품어봐서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엄마니까... 백번 그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았는데 어찌 이리도 잔인한지 지수가 돌잔치를 하는 모습을 지현이는 끝내 보지 못했다. 큰 아이가 여섯살. 작은 아이가 이제 막 돌쟁이가 되려던 그 해 겨울쯤 지현이는 정말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으로 아이들이 눈에 밟혀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채 온 가족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리고 세상과 작별을 했다. 

얼마전 지현이의 네 번째 기일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기일을 챙겨왔던 건 아니지만 겨울의 끝자락, 봄이 시작되기 전 나는 늘 지현이가 떠올라 아직도 지워지지않고 있는 지현이의 카톡에 아이들 사진을 덩그러니 찾아보곤 한다. 


 


두 아이는 지현이 부모님께서 사랑으로 키워주고 계시다고 지현이 동생을 통해 들었었다. 

그리고 작년, 지현이의 남편은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그런데도 아이들은 여전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학교를 다니고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물론, 지현이의 남편도 젊으니 새로운 인생을 사는 거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현이 가족들 마음이 오죽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제 문득 지현이 생각이 나서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다. 윤종신의 '배웅'이라는 신청곡을 넣어 친구 지현이가 보고싶다는 내용으로 사연을 보냈는데 덜컥 그 사연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고 신청곡인 배웅이 들려오니 울컥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든 산 사람은 살아지는구나. 

좋은 세상을 못 다 살고 떠난 사람만 안타까운 일이구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면서 아등바등 산다는 일이 부질없을수도 있겠다 싶다. 

행복하게 산다는 일이 무엇일까. 곰곰 되돌아봐야지. 


지현이가 하늘에서 아이들 걱정없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각자의 위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