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든, 공부를 하든, 책을 읽든 강박관념처럼 각종 필기구와 노트 등이 준비가 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어딘가 여행을 가더라도 꼭 장기간 집을 나가는 사람처럼 아끼든 물건들까지 소소하게 죄다 가방에 담아버리는 습관이 있다. 한동안은 입술이 건조해질 때 바르는 립밤에 집착을 보여서 마트만 갔다 하면 의무적인 것처럼 그걸 그렇게 하나씩 사곤 했던 것이 파우치 두어개는 꽉 채웠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증상인지 나도 병원에 한번 가봐야 하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이 들곤 했었다.
결정적인 것은 책이었다. 예전에도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책을 가까이 했지만 끝까지 한 권을 읽는 것이 어려운 일처럼 되어버렸다.
" 와이 낫"
마음이 공허해서 그럴거야. 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면서 무언가 한 가지 물건에 집착을 보이면 끝을 보려고 했다. 그 한 가지 물건이 색이 다른 종류들이라면 색색별로 구비가 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그러다보니 펜을 하나 사더라도 같은 종류의 펜이 색깔별로 필통에 들어있고, 가방도 같은 브랜드의 같은 디자인의 가방이 색깔별로 최소 10개는 있는 것 같다. 이쯤되니 병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계속 같은 걸로 또 구입을 하거나 모았다. 그렇다고 공허하거나 스트레스 쌓인 마음이 풀리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고쳐지지 않았다. 어느 날은 친한 동생이 놀러와서 화장대 서랍을 열어보고 기겁을 하는 것이다.
k사의 화장품 파우치가 30개 정도 서랍에 고이 모셔져 있는 것을 본 것이다. 동생은 신이 나서 그 중 몇 개를 갖고 싶다고 고르고 있었다. 속 좁은 언니가 되고 싶지않아 쿨 한척 몇개 챙겨가라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 쟤네들은 다 있어야 하는 애들인데....라고 속으로 불편함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게 아닌데 이런다고 마음이 편해지고 공허함이나 허전함이 채워지지는 않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씩 나누어주고 안쓰는 물건들을 정리해서 버리고 재활용하고 그러면서 비워내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집착'이라는 것인데, 이 집착에는 여러 종류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집착을 보인다. 이건 어린시절부터 이어온 애정결핍에서 오는 증상이라고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그 마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지레짐작으로 상대방이 나를 멀리한다, 싫어한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역으로 내가 상대방에게 집착을 보이는,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상대방이 좋아하겠지, 나를 한번 더 봐주겠지 하는 마음에서 오는 어쩌면 아픈 행동일 수도 있다는 것을.
물건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내가 스스로 마음을 채워보고자 선택한 것이 그냥 특정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필기구가 되었든, 가방이 되었든 옷이 되었든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비워내기 시작하면서 점점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냥 가지고 있던 것들의 절반을 덜어낸다고 생각한 것인데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랄까.
오히려 편안해졌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소유한다고 해서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사실 수많은 옷이 있어도 입는 옷은 늘 정해져 있고, 필기구가 넘치게 있어도 쓰는 펜은 늘 한가지인 것처럼.
그것들이 사람의 마음까지 채워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마음은 오히려 더 채워지는 것 같았다.
완전히 정리를 하려면 멀었지만 이렇게 정리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또 다른 변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한 무소유의 삶이 아닌, 적당히 가진 것에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지향하고 싶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내기 보다 지금 내가 가진것에 소중함을 알아가는 신박한정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