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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 끝에서 온 빛 May 07. 2024

30살, 그 아찔함에 대하여

내가 원하지않는 장면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않은 일들이 일어났다며 한탄한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질병들 나혼자 짝사랑하고 어장관리 당했다며 바람을 폈다며

살인을 강간을 당하고 학교폭력을 당하고 전쟁이 일어나고 배고픈 누군가와 홀로 걷는 늙은이들이  원하지않는데도 내 눈에 자꾸 보인다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하나씩 집고 정확히 들춰내서 확인을 해야만 한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두눈으로 확인을 해야만한다. 확인을 하지않으면 그것이 아무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짜라고 보는 꼴이고 고통을 줄곧 쓰레기를 줄곧 간직하는 꼴이 되기때문에


그런 많은 모든 일들이 나랑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느꼈을 때 나는 너무도 무기력했다. 다 나랑 관련이 있는 나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나는 나 하나도 구할 수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사람은 자기 하나도 못구한다. 치유를 해주겠다느니 그런 것들은 모두 사이비이다. 하지만 진정한 치유는 나 하나도 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수시로 확실히 인지하는데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나는 모든 순간에 나 혼자 해결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순간이 너무나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그것들 모조리 실패로 돌아갔다. 내가 만든 것들 모두 만드는 동시에 늙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비극이 싫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구할까.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누군가가 나를 치유할 수는 이 지구가 삼백만번 지어졌다가 사라져도 없다.


한국에 사이비가 굉장히 많은 이유이다. 주종관계가 성립이 되는 것은 사이비이다. 인간 그 자체가 무한한데 한정된 것을 나누고 우열을 가리고 싸우자니.

그게 사이비지.

허나 아무래도 나는 그것들조차 내 눈에 담고싶어했을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가 내렸기때문에 내 눈앞에 보인다.


내가 원하지않았다고 착각하는 순간에도.

내가 원하지않는 것은 절대로 내 눈에 절대로 보이지않는다.

나는 이런 세상을 원했다. 그것부터 시작이다.

나는 사소하고 큰 모든 것을 모조리 남탓을 하면서 증오심을 내뿜는 순간에는 지옥이다.

내가 증오심을 갖는 그 모든 것들은 내가 내린 결정이다. 증오의 사라짐은 이걸 확실히 인지해야만 증오가 사라진다.


그 모든것들은 사실 내가 만들어냈다. 여기는 남의 꿈속 세상도 아니고 내 꿈 속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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