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모습이 그렇게 통통 튀며 가볍고 청량하면서도 상쾌하게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니, 어떤 날은 안 읽던 분야의 책이나 그냥 끌려서 여는 책들도 누군가의 정제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마주한다.
책에 줄을 긋지 않고 보는 사람에게 그 책 아껴서 뭐하려고 그러냐고 타박 하시는 분도 있는데, 어디 좋은 글 인용해서 써 먹으려고 보는 게 아니라 책 저자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 청중이 된 기분으로 책을 펼치는 행동을 하는 거라서, 밑줄을 긋지 않는다.
이 책은 이런 느낌을 줬다.
감성 담은 따뜻한 필터를 입은 듯 아날로그 감성을 두드리고 깨운다.
이 작가분이 낸 책이 많은데, 그럴 수 있던 힘이 뭔지 느껴졌다.
묘하게 위로된다.
편안해진다.
내용이 알차다.
먹어보면 맛있어서 또 먹고 싶은 아주 맛있는 음식처럼 계속 곁에 두고 보고 싶다.
내가 하루 종일 하고 싶은 것 - 마시고 이야기 듣고 생각하기.
작가로 유명해지기까지 쓰고 달리고 쓰고 단련하고 부지런히 다듬고 애쓴 모습들이 보인다.
정말 좋은 곱씹고 싶은 대목은 여러 번 반복해서 내가 다시 읽으면 되서, 책은 앞 뒤 넘겨보는 부분이 디지털 기기 전자책이나 동영상 위치 탐색하기, 화면 텍스트 스크롤 해서 넘겨가며 찾기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편하다.
키워드 검색하고 싶을 때는 Ctrl+F가 없는 아날로그 책이 불편하지만, 대체로 그런 단어로 찾아볼 일은 없다.
무거운 어둡고 진한 이야기도 무섭지 않게, 사건 자체는 고통을 모른 채 일어나니 상황과 처지는 덤덤하게 들려주고, 본인의 슬픈 기운과 기분까지는 푹 잠기지 않게 꺼내는 분은 고수 중의 고수다.
무라카미 하루키 명성만 익히 듣고 소설을 잘 안 봐서 이 분작품들은 표지만 봤는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같은 에세이가 나에게는 더 잘 맞다. 책을 펼치는 목적이 다른 사람의 진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라서 이런 이야기를 흠뻑 듣고나면 나도 내 생활을 잘 살아봐야지 하는 의지와 에너지가 생긴다.
일본어 원문으로 읽을 줄 알면 더 생생하게 작가가 하는 말들 속에 담긴 진한 제 맛과 온도가 살아날텐데, '내가 바로 번역 문장이다!' 라고 느껴지는 어색한 지점들이 읽는 동안 조금 마음에 걸렸다. 내가 꽤 오래 팔로우 했던 페이스북에 매일 글을 올려주던 작가님도 하루키 책 번역투 문체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느꼈다.
번역이 얼마나 힘들고 번역가 머리 빠지는 일인지는 알기에 엄청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 막 달리려고 속도 내다가 간간히 브레이크 걸리는 느낌 정도였다. 일본어를 잘 모르니 아쉽지만 내가 다음에 일어를 꾸준히 배운다면 해소가 될 것이다.
영어도 되든 안 되든 계속하니 영화볼 때 그 빠른 대사가 들리는 기적이 생기듯이, 꾸준히 해서 안 되는 것은 별로 없다.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그 사람들은 대체로 본인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하다는 것도 안다. 꾸준히 잘 할 때까지 부지런히 체력 단련하며, 좋은 것들을 보고 듣고 내 안에 붓고 거듭 채우며 부족할지언정 부끄럽지 않은 생각들을 계속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