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를 안 볼 수는 없지만, 그 것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 아무 것도 안 하는 때가 더 많고, 그렇게 살다보면 아무 것도 아무렇지 않게 해버리기가 어려워진다.
좋은 멋진 대단한 작품이 아니면 어떤가. 내가 고민해서 내 나름대로 표현해 보는 거니까, 스스로 아주 흡족하지 않더라도 내 안에 있는 것을 꺼내보려고 애 쓴 것에 대해 기쁜 마음을 가져보자.
곁에 날카로운 비판자 말고, 부드러운 옹호자를 두면 이 과정이 쉬워진다.
아래 내가 어느 날 저녁 혼자 심취해서 조합해 보고 배치해 본 작품은 뭐 엄청 대단히 주목받을 무언가는 아니더라도, 내가 뜻한 어떤 계기가 있어서 혼자 이렇게 저렇게 표현해 봤고,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거장의 작품이라고 해서 모두 사실적인 표현이거나 굉장히 특별한 무엇들이 있지는 않으니 나도 나만의 세계가 있는 아티스트라고 해 두자.
공간을 채우는 작품들을 오며 가면서 보는데, 어떤 작품을 보면 쉽게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표현을 내 눈 앞에 선사한 최초의 작가가 얼굴 모를 어느 작가님 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대단한 작품 세계는 존중하면서, "나라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작가님들이 부지런하게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도 한번 나답게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잘 해 봐야지" 다짐을 하고, 이 과정이 반복되서 어느 곳에서든 작품을 보는 것 자체가 아주 좋고 큰 기운으로 돌아온다.
적을 만들어도 상관없는 사람은 그 대화법이 적힌 책에는 아무 관심도 없을테지만, 대체로는 수 많은 사람들이 조용하면서도 살벌하게 미친 독한 사람들과 둥글게 살아야 하므로, 대화법이나 자신의 심리를 다독이는 책들이 계속 눈 앞에 도드라져 보인다.
얼마나 남에게 쏟는 신경을 못 끄고 사는지 몇 년이 지나도 허구헌날 서점에 그득한 책들이 바로 이런 류다.
잘 보여야 할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해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으라든지, 나를 힘들게 하는 부류와 계속 얽히게 되면 이렇게 가뿐히 무시해 버려라는 주문을 외우라든지 둘 중 하나다.
많은 미치광이를 피할 방법이 없다면 다치지 않기, 아프지 않기 미치지 않기 어려운 세상이기도 하지만, 은근히 좋은 사람들이 세상에 절반쯤은 차지하고 있어 상처와 위로가 적당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위로를 받고 싶다면, 먼저 위로의 말을 건네면 되고, 응원받고 인정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응원하고 인정해 주면 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 좋은 사람들 가까이에서 지내고, 유쾌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내가 하는 말에 잘 웃어주는 사람과 자주 대화를 하면 된다.
나쁘고 힘든 사람을 아주 잠시는 버티거나 견딜 수는 있지만, 내가 병들지 않고 극복할 수는 없다.
내 친구나 동료 중에는 "독한 상사"를 3년 이상 머리에 이고 산 것을 초연하게 말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다른 사람들은 짥게 거쳐서 힘들다고 못 버티는데, 난 버텨내서 독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단한 성인군자이거나 인내심이 많고 연기력이 남다른 어떤 특별한 묘안이 있어서가 아니라 절대 깨면 안 되는 5년 적금이라든지 외부적인 요인으로 스스로 그만 두면 손해가 큰 일을 만들어 둔 것이었다.
상사 앞에서는 '아, 그렇네요. 제가 잘못 생각했네요. 대단하세요. '라고 무조건 납작 엎드리고 뒤에서는 그 때 열 받고 억울하고 화가 난 것들을 다른 방법으로 잘 흘려보내고 있었다. 상대를 뽑아낼 수는 없으니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슬프게도 난 솔직하게 살고 싶어해서, 싫고 꺼려지는 상대에 대한 연기력이나 웃으며 참아내는 인내력 임계치가 높지는 않다는 것이 확실히 증명됐다. 최대한 경청력이 좋은 세심한 동료와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만기까지 가져가야할 예적금은 내가 챙기는 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전문 분야는 잘 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에너지를 쏟아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돈을 많이 벌길 바란다는 의미가 있어 가는 신장개업 가게마다 걸린 해바라기 작품은 그런 의미가 아주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닐거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이 통하는 지점이 바로 재물운을 비는 소원이라서 그렇게 회자되고, 익숙한 관행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