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이 작정하고 들면 참 무섭다
제게는 여름 호러영화보다 더 오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그 집요하다는 신천지와 애정 배틀을 하게 된 건가?' 여기까지 생각이 닿더라구요.
사실 일흔이 넘은 평범한 여성분들은 처음에는 무표정해서 세상 무심해 보이지만, 마음을 한 번 열고 나면 가까이 다가오는 분들께 그리 경계심이 없고 나중에는 무한대로 퍼주다시피 베푸는 것을 그런 다정한 분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시어머니 말씀으로는 동네에 사는 '남편 친구의 아내'라는 분이 '언니랑 친해지고 싶다' 며, 계속 연락을 주신다고 해요.
강사님의 강연은 일 주일에 세 번, 내년 3월까지 이어지고 좋은 말씀 듣자고 인문학 강의로 초대해서 세계 4대 성인을 들었다는데, 다행이라고 보는 건 어머니가 들은 이야기를 그냥 잊어버린다고 하시더라구요.
강연을 듣고서는 들은 이야기를 잘 기억했다가 누구에게 잘 전하려고 듣는 게 아니어서 딱히 뭔가 하기 애매한 하루의 빈 시간을 때울 겸 그냥 좋은 이야기인가보다, 강사가 말을 참 잘 하더라 이 정도의 소감을 이야기하셨어요. 이 건 진정성 있게 포교를 하러 다니는 용사 후보로는 적합하지 않은 느슨한 자세여서 이 부분이 내심 다행으로 생각되었어요.
저희 시어머니께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그 분께 연락해서 말하고 싶지만, 친구 가려사귀라고 하기도 그렇고 엄연히 성인 간의 인간 관계이니 시어머니께서 알아서 거리를 두시리라 믿는 수 밖에 없겠지만, 사실 솔직히 말해서 그 누가 그 어떤 종교에도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겠어요. 힘들고 삶이 무거울 때 종교만한 도피처가 또 없어요. 저는 책을 도피처로 삼고 있지만요.
시어머니는 책이 눈에 안 들어와서 읽을 수가 없다고 하셨어요. 다양하게 여러 사람을 만나고, 편하게 웃고 식사하고 땀 흘려 운동도 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랍니다.
시아버지를 떠나 보낸 시어머니의 공허한 마음의 빈 자리를 파고들기 딱 좋은 시기라서 그 분께는 참 좋은 기회겠지만, 가족 입장에선 아무 때나 걱정이 떠오르게 되는 '주의해야 할 만남'이 아닐 수 없어요.
마음이 워낙 약한 분이고, 정에 끌리는 게 또 사람이니까요.
한 편으로는 "가족 감시자로써 시어머니가 계신 대전에 자주 찾아가야겠구나. 애정을 그 들에게 온전히 빼앗기지 않도록!" 이런 생각도 혼자 해보고, 어젯 밤에는 반려인에게 이런 걱정의 말을 전하기도 했답니다.
어머니가 오래 전부터 절에 가끔 기도하러 가시고, 시할아버지 시할머니부터 시아버지까지 제사를 맡겼지만, 불교에 그리 진심도 아니신 거죠.
지난 주말에는 '요즘 사람들이 하도 절에 제사를 맡겨서 참 너무 성의없게 숟가락 많이 우루루 꽂아서 대충 제사 지내는 게 맘에 안든다.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제삿상을 보고) 이 년아, 이 걸 먹으라고 차려왔냐고 하시지 않을까 싶다'고 걱정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수 틀리면 언제든지 거기서 마음이 떠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부처님 말씀에 진심으로 감동해서 수양하는 불교인 게 아니고, 그저 내 마음 편하려고 하는 기복 신앙이니까,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틈이 있는 상태인거죠.
그러니 저는 좀 더 자주 시어머니께 전화도 드리고, 찾아뵙고, 신천지 포교상황의 진전도를 질문으로 체크하는 것 외에는 당장 같이 살 상황은 아니니 다른 수는 아직 안 보이네요.
진정성 있게 외로운 한 사람의 영혼과 마음을 사로잡겠다고, 꾸준한 연락과 노력과 친밀감으로 파고드는 건 세상 모든 사업가에게 참고와 귀감이 되는 교훈이 되겠지만, 조금 미안하지만 멀리 사는 며느리에게는 이단 포교인 집단은 '참 괴롭고 슬픈 존재'들이랍니다.
제사가 당신 인생에 중요하면 차라리 성당에 다니셨으면 좋겠지만, 계기가 딱히 없으니 혼자 찾아 가실 분은 아니고, 일단 저도 귀찮아하지 말고 꾸준하게 시어머니에게 전화 연락해서 26년 3월까지 신천지와 가상으로 진행하는 '애정 배틀'을 꼭 승리로 장식하겠습니다.
이단이라는 연관 키워드가 언젠가 신천지도 독특한 맛의 음료 '맥콜'을 파는 통일교만큼 커지면 사라지겠지만, 아직은 그 키워드가 불러 일으키는 대다수 대중의 감정이 심리적으로 '거부와 방어'부터 '도망쳐!'가 떠오르는 것을 보니 아직은 그 부흥의 때가 오지는 않은 것 같아 보이네요.
본인 마음에 쏙 드는 종교에 심취하는 건 자유인데, 제 시어머니는 그 곳에 데려가지 말아주세요. 사랑하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