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더군요
기분이 좀 꾸물꾸물한지 오래 되서 그런지 가볍고 굵은 몸살을 막 앓고 빠져 나오는 참입니다. 아쉬운 일들을 거듭 되새기며 나를 책망하느라 축 쳐진 마음의 병과 지쳐버린 몸이 환상의 시너지를 이루어 버린 것이죠. 급기야 병원 처방약을 받아 먹어야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던 것인데, 그 어느 때보다 푹 오래 자고 쉬고 지내며 심신을 잘 달래줬더니 빠르게 회복되어서 다행이었죠.
많은 일들을 겪으며, 한 해씩 지나갈수록 어째 제 안에 존재하는 '고통의 터널'이 굴곡이 많고 길어지는 것 같은 건 단지 기분 탓은 아닐 거예요. 누군가 그 것 또한 어른이 되는 '성장통'이라고 한다면, 성장이 되긴 한 건지 솔직히 가늠이 안 되고 '통'만 쩌렁쩌렁 제 몸통을 울리고요. 마음이 커지거나 넓어지거나 하는 건 또 다른 훈련이거나 수련 분야는 확실한 것 같구요.
모수 데이터가 적긴 하지만, 나이가 얼마가 되었든 옹졸한 사람은 그대로 굳어져 가고 더 고집이 세어지는 모습을 많이 봤기에 '마음이 넉넉한 어른'이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새삼 떠올리게 되네요. '마음이 넉넉한'은 애초에 이기적으로 태어나버린 사람은 불가능하다고 치고, 평생 '어른'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고 들어도 부끄럽지 않고 써도 괜찮겠는 날이 나에게도 오긴 올까? 그러려면 난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을 부단히 해야할 것인가? 답도 없는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어려우니까 일단 '어른'이 되는 건 좀 나중으로 미루고, 오래 사는 게 반드시 축복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 나이가 든다고 해서 거뜬하고 쉬워지는 게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것 같기도 해서 여전히 저는 가끔 '되게 살기 힘들다' 이렇게 말하고 싶기도 하고 그래요. '삶은 기술이 아닌 예술'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여기서 얼마나 더 아름답게 빛나려고 이렇게 또 눈물과 고통에서 허우적대는지, 더욱 슬픈 건 눈물 콧물 닦은 쓰레기 말고 괜찮은 산출물이나 딱히 이거다 싶은 건 없고요.
어째 갈수록 찌질함 덩어리에 가까운 것 같은 우주 먼지이자 미물인 나 자신이 갈수록 좀 더 선명하고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난 좀 괜찮고, 대단한 사람인 줄 착각했던 치기 어린 때가 마음은 좀 더 편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상대를 이해할 깜냥이 안 될 때는 눈 앞에 보이는 '남'만 한없이 미워하면 되거든요. 이제는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줄 안답시고 상대도 입장도 이해되고 나도 별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라는 사실이 선명해지니까 어떤 감정이든 한번 복잡하게 꼬이면, 얽히고 설켜서 풀어내기가 굉장히 오래 걸리고 복잡해져요.
한참 시간이 지나서 속 시원하게 '탁!' 가위로 복잡한 흐름들을 단숨에 잘라버리는 순간이 될 때까지는 남들은 모르는 에너지를 제 안에서 엄청나게 소모하는 셈이죠. 제 안에서 해소가 된 뒤에는 가까운 이에게 털어놓을 수 있게 되는데, 나 자신이 고통을 경험한 뒤 '정리된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때에만 타인의 공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고통 속에 있을 때는 백날 소리쳐 봐야 '울부짖음'이라서 해 봐야 다른 사람은 공감도 안되고, '시끄러우니까 그만해'라거나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이런 모질게 들리는 소리 밖에 못 듣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해요.
사람이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도 되고, 보고 싶은 사람만 보면 성공한 거라고 하잖아요? 떠올리기만 해도 좋은 그렇게 편안한 사람을 통해 나 자신을 한껏 끌어 올려주는 가볍고 따스한 기운의 결을 만드는 겁니다. 몸과 마음이 이어져 있다보니 제대로 건강하려면 '만나는 사람 잘 가려서 내 안에 모시기' 이 것도 하나의 중요한 건강관리 비법이 맞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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