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기수와 서수는 쉽지 않다

영어로 그리고 우리말로 숫자 세기

  영어로 배우는 노래 중에 그런 게 있다.

one little, two little, three little indians / four little, five little, six little indians…

지금은 유치원생이 배우는 노래이지만 1970년대에는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배웠다.

물론 이 노래를 배우기 전에 원, 투, 쓰리, 포로 시작해서 텐까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는 권투가 인기 종목이었고, KO가 되려면 텐까지 세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프로 레슬링은 쓰리까지만 알면 되었고.


  중학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우면서 텐 이후의 숫자를 배우게 되었다.

일레븐, 트웰브.

‘거 참… 텐 원, 텐 투하면 좋을 것을…’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다음은 좀 낫다. 써틴, 포틴, 피프틴으로 나가면서 뭔가 쓰리부터 나인까지와 발음이 비슷하니까.

그러고 나면 트웬티. 트웬티 원, 트웬티 투로 이어지면서 이게 웬 떡이냐 싶다.

트웬티 다음에 원, 투, 쓰리를 붙여나가면 되니까.

써티, 포티, 피프티로 이어지는 것도 같은 원리라서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다 퍼스트, 세컨드, 써드를 배우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먼저 <기수>와 <서수>라는 처음 듣는 단어를 이해해야 했다.

서수의 첫 부분인 퍼스트, 세컨드, 써드는 알고 있었다.

야구에서 일루, 이루, 삼루를 퍼스트 베이스, 세컨드 베이스, 써드 베이스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으니까.

그러나 거기까지일 뿐이고 그다음부터는 고행의 연속이었다. 



  포스, 핍스, 식스스, 세븐스, 에잇스, 나인스, 텐스. 포에서 텐까지의 단어에 th를 붙이는 것이어서 발음은 어려웠지만 그래도 이해는 비교적 쉬웠다.

11에서 19까지도 그런대로 해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스물한 번째가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트웬티 원에 th를 붙이고 끝내고 싶은데, 갑자기 트웬티 퍼스트가 되어버렸다.

그다음은 트웬티 세컨드, 트웬티 써드. 그러더니 다시 트웬티 포스 체제로 전환.

그러더니 써티에서 써티 퍼스트, 세티 세컨드, 써티 써드로 다시 돌아오더니 그다음은 다시 써티 포스로 방향 전환.

고난의 연속…


  자,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자.

영어로 뭔가를 세는 게 어렵다고?

그런가?

그럼 우리는 쉬운가?

우리는 뭔가 셀 때 간단한 것 같은가?

정말 그런지 한 번 생각해보자.


  술병을 셀 때 ‘열 병’이라고 말하지 ‘십(10) 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옷을 셀 때에도 ‘다섯 벌’이라고 말하지 ‘오(5) 벌’이라고 하지 않는다.

닭도 ‘세 마리’라고 하지 ‘삼(3) 마리’라고 하지 않는다.

호박 ‘한 개’라고 하지 ‘일(1) 개’라고 하지 않는다.

설혹 거기 적혀있는 게 <10병, 5벌, 3마리, 1개>이어도

우리는 자동적으로 <열 병, 다섯 벌, 세 마리, 한 개>로 읽는 것이다.

하나, 둘, 셋(세), 넷(넷), 다섯과

일, 이, 삼, 사, 오를 구별해서 쓴다.

이게 우리말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쉬울 것 같은가? 


  그리고 15분 40초는 <십오(15)분> <사십(40)초>라고 읽는다.

 <열다섯(15)분> <마흔(40)초>라고 읽지 않는다.

그러면서 3시 3분의 경우,

앞의 시는 <세(3)시>라고 읽고

뒤의 분은 <삼(3)분>으로 읽는다.

이걸 또 24시간제로 읽으면 <공삼(03)시> <공삼(03)분>으로 읽는다.


  게다가 6월은 <육>월이라고 읽지 않고 <유>월이라고 읽고,

10월은 <십>월이라고 읽지 않고 <시>월이라고 한다.


  보라.

우리도 만만치 않다.

외국인이 우리말을 배울 때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것 이상으로 힘들어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는 않으시는지?




  근래에 <하나>라는 말 대신 <1>을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재미가 하나도 없다.'라는 말 대신에  '재미가 1도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재미가 1도 없다'라고 써놓고 '재미가 하나도 없다'라고 읽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재미가 일도 없다'라고 읽는 것이다.

말할 때에도 '재미가 하나도 없다.'라는 말 대신 '재미가 일도 없다.'라고 말한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방송사 프로그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대로 방송된다.

<하나>와 <1>을 구분해서 사용하는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걱정 될 수 밖에 없는 세태이다.




작가의 이전글 가신 분 기억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