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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 분 기억하기

사람은 가도 기억은 남아

  어느 금요일의 조금 늦은 밤.

간단한 안주를 만든 후 소주병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의아하게 생각한 아내가 말했다.

“아니 아까 저녁을 더 먹지 않고서…”

“아, 선친 생신이니까 한 잔 해야지.”

“오늘이 아버님 생신이야?”

“여기는 전야고, 한국은 생신 아침.”


  어머니 생전에는

선친 생신이 되면 핑계 삼아 전화를 드리고는 했다.

선친 생신임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그냥 다른 날처럼 안부나 여쭙고 소소한 얘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보통은

“아부지 생신이라 전화했니더…”

라고 말씀드린다.

이때 대개 어머니께서는

“죽은 사람 생일은 머한다꼬…”

라고 말씀하셨다.


  고등학생 시절에 그런 말을 들었다.

‘버림받은’ 여인보다 더 가련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라고.

그때는 그게 이해되지 않았다.

잊혀진다는 것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나이가 들고 주위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떠나면서

그 말이 조금씩 조금씩 생생하게 다가왔다.


  선친 가신지 30년이 훨씬 넘었다.

그 30년 넘는 세월 동안 자주자주 아버지를 생각해왔지만

가신 날과 오신 날은

술을 마시면서 조금 더 오래 생각했다.


  <코코>라는 만화영화가 있다.

멕시코 문화에서의 이승과 저승 얘기를 배경으로 한 것인데

거기 그런 내용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일단 저승으로 가고

일 년에 한 번 이승으로 건너올 수 있는데,

이승에서 기억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그때

그 영혼은 소멸한다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선친 가신지 3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선친은 아직 죽은 게 아니다.

내가 가고

그리고

이 세상에 선친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그때

선친은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선친의 생신이 언제인지

그리고 가신 날이 언제인지

절대로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난해에 펜실베니아주의 랭카스터(Lancaster)를 갔었다.

아미쉬 사람들이 궁금해서였다.

거기 아미쉬 집과 농장을 관광용으로 전환한 곳을 갔었는데,

그 집 2층에 있는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가족의 이름과 그 생몰에 관한 기록(Family Record)이었다.

‘흠… 이것도 괜찮은 방법이군…’하는 생각을 했다.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것 중에 <가첩>이라는 게 있었다.

병풍같이 차곡차곡 접히는 장지갑 크기의 종이로 된 것인데,

거기 조상의 이름과 생몰에 관한 기록이 있어서

제삿날 확인할 때에 펼쳐보고는 했다.

이 가첩은 소중한 것이기에 아이들 손타지 않게 깊은 곳에 잘 보관했다.

이에 반해 아미시 사람들은 아이들도 잘 볼 수 있게시리

생활공간 안에 선대에 관한 기록을 전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시 잠깐

‘퍽 괜찮은 생각인데?... 저걸 만들어볼까?...’

하고 생각했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아서… 

저게 무슨 소용…

가신 분들에 대한 기억이라는 게 저렇게 액자 속에 남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람…

나 태어나기 전에 가신 조부님과 조모님을 생각해보라구…

아무런 기억도 없이 그저 가첩 속에만 남아있는 분들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냐구…

가신 분의 기억은 머리 속, 가슴 속에 남아있어야 하거늘…’


  이건 내 생각일 뿐

아미쉬 사람들 방식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점은 틀림없다.

 

 

  사람은 가도

기억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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