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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의 첫 번째 원칙

미국 이민 선배가 미국 이민 후배에게 - 4

  <살아남기>.

낯선 땅, 낯선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될 때 가장 중요한 것이다.

관광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는 것이 아니기에 네게 <살아남기>는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다.

살아 남지 못하면 5년 동안 준비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빈손으로 두고 귀국해야 한다.

그러니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기>의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에게서 온다.

다른 조건들은 본인이 마음먹기에 따라 어찌어찌 극복해낼 수 있는데,

'사람'은 본인의 마음먹기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고

상처도 깊다.




  첫 직장이었던 항공기 기내식을 만드는 미국 회사에서 겪은 일 하나.


  나는 창고(storeroom)에서 일했다.

기내식 만드는 현장 사람들에게 갑자기 뭔가 부족한 것이 발생하면 창고로 직접 와서 받아가고는 했다.

어느 날 월남 출신 중년 여성이 창고로 와서는 ‘몽그레이’를 달라고 했다.

몽그레이?

몽그레이가 뭐지?

입사한 지 1년도 안되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퍽 많은 식자재를 익혔는데

‘몽그레이’가 뭐지?


몽그레이가 뭔지 도저히 알 수 없어서 그녀에게 물었다.

“아, 몽그레이도 몰라, 몽그레이? 창고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그녀가 살짝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더 붙였다.

“너 영어 알아?”

이런 세상에…

영어는 내가 너 보다 낫게 하는 것 같은데?...

내가 해결하지 못하자 그녀는 월남 출신 창고 근무자에게 도움을 청했고 결국 그가 해결했다.

그가 그녀에게 건넨 것은 ‘멀티 그레인’ 식빵이었다.


멀티 그레인. Multigrain.

밀가루로만 만든 식빵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다양한 곡물로 만든 식빵.

'멀티 그레인’ 식빵이 건네지는 것을 보는데 기가 막혔다.

이게 '몽그레이'였어?

세상에나…

몽그레이가 멀티 그레인이었단 말이야?

멀티 그레인을 몽그레이로 발음하는 당신이 감히 내 영어 실력에 대해 말해?...’


  그러나

그녀는 10년 이상 일해온 사람으로서 평직원보다 살짝 높은 선임(lead)의 직위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입사 1년도 안된 신입 직원.

내가 그의 말을 알아들었어야 하는 것이다.

그녀가 '몽그레이'라고 말하면 내가 '멀티 그레인'으로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건 '몽그레이'가 아니라 '멀티 그레인'이라고 그녀를 가르치는 것은 할 만한 일이 아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가 나에 관해 험담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녀가 ‘몽그레이’를 찾으면 ‘멀티 그레인’을 찾아서 건네주면서 말이다. 




  낯선 곳에서 살아남는 첫 번째 원칙은 ‘적을 만들지 않기’라고 할 수 있다. 친구,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런대로 견딜 수 있다. 그런데 적은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몹시 힘들어진다. 친구 열 명이 적 한 명을 이기지 못한다. ‘나는 그를 적으로 삼고 싶지 않고, 그 또한 나를 적으로 삼지 않기를 바라’는데 그가 나를 적으로 삼아버린다면 이것은 피곤에 피곤을 더하는 일이다. 학생생활기록부에, 표창받은 기록은 없어도 되지만, 정학 같은 처벌사항이 기록되어있으면 진학이나 취업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과 같다.


  적 만들기.

이것은 어떤 조직이든 반드시 존재하는 현상이다.

조직의 하부에서는 그 현상이 눈에 잘 보이는 것이고,

조직의 상부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게 교묘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감히 말하건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적 만들지 않기.

살아남기의 첫 번째 원칙이다.

쉽지는 않지만 노력은 해야 한다.


  그리고

먼저 도착한 사람은 나중에 도착한 사람에 대해 반감을 갖게 마련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경우 직장의 선임자가 자신의 후임자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의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땅에 먼저 도착한 유럽 사람들이

원주민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한 후

자신들보다 늦게 도착한

중남미나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에 대해 반감을 갖는 것도 같은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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