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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

자유를 위한 고귀한 희생, 그 기억과 감사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에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 이하 한국전 기념공원)이 있다. 링컨기념관(Lincoln Memorial) 바로 앞에 있는 이 곳은 한국전이 발발한 날인 6월 25일과 휴전일인 7월 27일 즈음에 행사가 열린다.


지도는 국립공원(Natinal Park) 당국에서 발행한 것을 촬영


  여기 온 관광객들 대부분은 거기 있는 군인상을 촬영하거나 그것을 배경으로 셀프 카메라(셀피)를 찍고는 그냥 가버린다. 여기에 왔었노라는 ‘증명사진’을 찍었으니 끝이라는 뜻이다. 경치 좋은 곳에서 그 경치를 촬영하거나 그것을 배경으로 셀프 카메라를 찍는 것과 같다. 아쉽게도 우리 한인들도 대개 그랬다.

  여기서 본 한인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한 팀이 있다. 한 사람의 안내로 어린이를 포함해서 모두 8명이 이곳에 왔었는데, 그들은 <FREEDOM IS NOT FREE>이라는 글귀를 사이에 두고 네 사람씩 서서 사진을 찍고는 그냥 가버렸다. 그게 다였다. 그걸 지켜보면서 예리한 면도날이 가슴을 긋는 아픔을 느꼈다.

  하…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여기서는 아픈 과거에 있었던 희생을 되새기고, 그 희생에 감사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굳게 결심하는 경건한 곳이다. 경치 좋은 곳을 대하는 것과는 마음 자세가 아주 많이 달라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이 공원을 조금 특별하게 바라보아야 하기에, 알아두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아보았다.




  이 공원의 전체적인 모양은 ‘원을 향한 삼각형’이다.

원은 자유 수호에 따른 희생을 추모하면서 평화를 기원하고,
삼각형은 자유를 향한 전진의 의미를 담은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원 – 희생의 추모와 평화의 기원


  공원의 가장 안쪽에 동그란 모습의 추모의 인공연못(Pool of Remembrance)이 있고 그 안에 물이 계속 솟아나는 분수가 있다. 그 분수는 참전 용사들을 향한 우리의 추모도 계속 솟아난다는 뜻일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이 연못 주위에 연못의 원을 따라 나무를 심었다. 조경이 잘 되어있는 그 나무 밑에는 벤치가 있어서 거기에서 연못에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조용히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릴 수 있고 또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연못 곁에 있는 벽에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벽이 있다.


  이 글귀의 의미를 잘 알기 위해서는 이 벽과 연못 사이에 있는 공간에 새겨진 것을 살펴봐야 한다.

거기 이렇게 새겨져 있다.

사망  미군   54,246   유엔군    628,833
실종  미군     8,177   유엔군    470,267
포로  미군     7,140   유엔군      92,970
부상  미군 103,284    유엔군  1,064,453

이 숫자들을 차례대로 읽은 후 고개를 들어 오른쪽 벽을 바라보면 거기 <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귀가 보이는 것이다. 즉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엄청난 희생이 있었다는 얘기가 거기 새겨져 있는 것이다. ‘희생 없는 자유는 없다’는 뜻이다.


  이 글귀가 새겨진 벽은 한국전 기념공원 방문 기념사진 촬영의 대표 장소이다. 여기서 사진 찍는 것, 좋다. 그러나 그 앞에 적힌 이 희생의 숫자들에도 눈길을 주자. 특히 자녀에게 이 글귀의 의미를 그 앞에 새겨진 숫자와 함께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치렀던 그 엄청난 희생에 모두 함께 경의를 표하자.


  사망 미군 숫자에 대해 파크 레인저(Park Ranger, 공원 안내원)는 '5만 4천 명은 전쟁 기간 중 전 세계에서 사망(dead)한 미군 숫자이고, 한국전에서는 3만 6천 명이 사망했다'고 말해주었다. 즉 한국전 전사(kill in action)는 여기 적힌 5만 4천 명이 아니라 3만 6천 명이라는 얘기인데, 3만 6천 명이라고 해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 참에 우리 국군의 희생도 13만 8천 명이나 된다는 것도 알고 가자. 이런 희생 위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잊지 말자.


삼각형 - 희생에 대한 기억과 자유를 향한 전진


  삼각형 안에는 전진하는 군인 19명의 모습이 스테인리스 스틸로 표현되어 있다. 이 안에는 육군만 있는 게 아니라 해병대, 공군, 해군도 있다. 파크 레인저의 설명에 의하면 기관총을 멘 사수와 기관총 거치대를 메고 탄약통을 든 부사수, 이 두 사람은 해병대이다. 군인 중에 무전기를 메고 헬멧이 아닌 모자를 쓴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공군. 무기를 휴대하지 않고 구급상자를 휴대하고 있는 사람은 해군 의무병. 그리고 인종의 다양성도 배려했다고 한다.



  군인 전원이 우의(poncho)를 입고 있는데 이는 한국전 전장의 가혹한 날씨를 말한다. 아마도 한여름의 장마나 한겨울의 강추위가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기 때문인 것 같다. 몇 년 전 비가 내리는 날 이 곳에 도착한 고교 동창은 비가 내려서 더욱 깊은 인상을 받았노라고 그의 페이스북에 남겼다. 이 군인들이 전진하는 삼각형 안에 배치한 나무들과 화강암은 울퉁불퉁 바위 등 험난했던 한국전 전쟁터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 군인들은 삼각형의 대오를 이루고 전진하는데 그 삼각형의 꼭짓점에는 전쟁 기간을 의미하는 <1950-KOREA-1953>가 적혀 있고 그 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알지도 못했던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수호하라는 나라의 부름에 응답한 우리의 아들과 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한국이라는 나라에 도착해서는 우리의 생존과 자유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 삼각형의 대오 옆에 검은색 화강암 벽이 세워져 있고 거기에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추모의 벽인 셈이다. 크고 작은 모습으로 새겨진 이 무명용사들은 실제 사진을 바탕으로 새겼는데 고국의 부드러운 산하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배열되었다. 그리고 이 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퍽 다양한 참전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여군은 물론이고, 보병, 포병, 수송, 간호, 통신, 전투기, 전폭기, 수송기, 전투함, 군종(유태교도 있다), 헌병 그리고 낙하하는 공수부대도 있다. 군견도 한 마리 있다. 공원 안내원 말에 의하면 워싱턴 디씨 안에는 두 마리의 개가 추모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벽에 새겨져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 검은색 화강암 벽은 다른 기능을 하나 더하고 있는데 그것은 19명의 군인상을 비추는 것이다. 즉 어느 정도 빛이 있는 날이면 19명의 군인상이 그 검은 벽에 비춰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삼각형 대오를 이루는 19명과 검은 벽에 비추어진 19명을 합하면 38명이 되어 북위 38도를 상징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삼각형 대오를 이루고 있는 인원이 분대를 이루는 인원보다 많은 19명인 이유이다.



  대오를 이루는 삼각형의 다른 한 변에는 한국전에 참전한 국가를 알파벳 순으로 새겨 놓은 돌이 있다.  호주(AUSTRALIA),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덴마크, 에티오피아, 프랑스, 그리스, 인도, 이태리,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필리핀, 대한민국, 남아공화국, 스웨덴, 태국, 터키, 영국, 미국. 모두 22개국. 우리는 ‘참전 16개국’이라는 표현에 익숙하지만 여기에는 전쟁 당사국인 우리를 포함해서 22개국 모두를 새겨 놓았다. 전투부대를 파병한 나라 외에 의료지원국 5개국이 있었다는 것도 잊지 말자.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 만나게 되면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지금은 경제적으로 조금 뒤처진 나라가 되어버린 콜롬비아나 에티오피아 출신 사람들을 만나면 꼭 감사인사를 전한다.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니까. 특히 에티오피아는 정치 체제가 바뀌면서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사실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고 하니, 참전용사들에게 더욱 감사해야 한다.


깃대에 걸어 놓은 기억


  삼각형과 원이 만나는 지점에 깃대가 하나 있고 거기에는 두 개의 깃발이 걸려있다. 위에는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가 걸려있고 그 밑에 검은색 기가 하나 더 걸려있다. ‘전쟁포로(POW, Prisoner Of War)와 실종자(MIA, Missing In Action)를 잊지 않겠다(YOU ARE NOT FORGOTTEN)’는 굳은 의지를 담은 깃발이다. 아직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향한 아름다운 마음씨가 거기 걸려있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가게 되면 땅에 있는 것만 바라보지 말고 하늘에 걸린 이 검은색 깃발에도 눈길을 주자. 지구 반대편 낯선 땅 어딘가에 남겨져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희생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남은 이야기


  이 공원은 1986년 미국 의회의 승인을 얻고 1993년에 착공하여 1995년 7월 27일 정전협정 42주년 되는 날 헌정되었다. 공원 조성에 관한 자료는 무명용사 얼굴이 새겨진 검은색 화강암 벽의 뒤편에 남겨져 있다. 19명의 군인상을 만든 프랭크 게이로드(Frank Gaylord)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다. 그러니 그는 자신의 이 작품에 더욱 각별한 의미를 담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해본다. 지금은 여기에 참전용사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을 세우려는 계획이 진행 중이다.


  이 검은색 화강암 뒤편에 작은 화단이 있는데 거기에 무궁화가 심어져 있다. 공원 조성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다시 한번 얘기하거니와 혹시 이 기념공원에 가게 되면 숭고한 뜻을 생각하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상관 말고,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하자.

적어도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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