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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카드로만

1920년대 중반에 태어나신 아버지와 1930년대 초반에 태어나신 어머니는 '사랑'을 드러내 놓고 표현하지는 않으셨다.

두 분 사이의 사랑은 물론이고 자식 사랑도 내놓고 표현하시는 법이 없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탓인지 나 역시 드러내 놓고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아버지 가시고 20년 넘게 혼자 지내시던 어머니께서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다.

태평양 건너에 있기에 찾아뵙지는 못하고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경과를 전해 들을 뿐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조금씩 스러져가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저 전화나 드리고 심심풀이 먹거리를 조금 보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요양병원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주사의 부작용으로 피부가 몹시 가렵다고 하셔서 바르는 약을 보내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 카드 한 장을 넣었다.



글자 쓰는 법을 배운 지 반 백 년이 지난 후에야 썼다.

어머니 당신을 사랑하노라고.


여든 중반의 세월, 폐암 4기.
이 아들이 당신을 사랑하는 줄이야 아시겠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표현'해드리고 싶었다.


카드를 보내드리면서

'머잖아 전화기에다 대고 사랑하노라고 말씀드릴 날이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거라고 예상했다.
"야가 왜인노. 여럽거르..."
(얘가 왜 이러지? 쑥스럽게시리...)

그렇게 말씀하신들 무슨 대수랴.

빠른 시일 내에 말씀드려야지.
늦으면 안 되니까...




그런데 그게 다였다.

전화로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께서는 둘째 아들 입에서 나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시고 가셨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음성으로는 듣지 못하셨어도

알고는 가셨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믿음에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믿어야

내 마음이 좀 나아질 게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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