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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등을 켜놓는 이유

기다림의 표시

늦게 돌아오던 날 바라본 집의 모습.



현관 옆에 켜져 있는 외등을 보면서 예전의 본가를 생각했다.  




양쪽에 벽돌로 된 기둥이 있는 본가의 나무 대문 위에는 슬래브 지붕이 얹혀있었고,
그 지붕 밑에 외등이 달려있었다.
그 외등은 집안 식구 모두가 돌아왔을 때 꺼졌다.

단 한 사람이라도 집 밖에 있으면 그 등불은 켜져 있었다.
그리하여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대문의 등을 보면서
'아... 나를 기다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울의 청량리역에서
오후 네 시 반 기차를 타고 거의 밤 열 시에 본가에 도착해도,
밤 아홉 시 너머의 기차를 타고 새벽 두 시 반에 본가에 도착해도
그 외등은 항상 켜져 있었다.
멀리서 돌아오는 아들아이를 기다리는 본가의 표현 방식인 것이다.


그랬다.

그 예전 본가의 대문에 달려있던 그 외등은
아이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기다림의 외등'이었다.


선친 가신 후 어머니께서는 그 집을 내놓고 연립주택에서 지내시다가 나중에는 아파트로 옮기셨다.

그렇게 되고 나서는 더 이상 '기다림의 외등'은 없었다.

아들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각을 모르실리야 없겠지만

그것을 표현할 방법은 없게 된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컸을 때

그리고 그 아이들이 밖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전이면

외등을 켜놓고는 했다.

아이들은 내가 왜 그렇게 외등 켜는 일에 열심인지 알지 못한다.


아이들이 알지 못한들 어떠랴.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 배운 것을 배운 대로 하는 것일 뿐

뭐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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