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에 또래를 위한 잡지로 새소년, 소년중앙, 어깨동무가 있었다. 그중 어디에서 본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앙코르 와트와 마추 픽추를 소개한 글과 그림을 보았다. 너무 신기한 세계. 그 어린 나이에 굉장히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 당시로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도저히 할 수 없는 ‘너무도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특권층>임을 암시하는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그 그림을 본 국민학교 이후로 두 곳에 관한 관심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나이가 들면서 ‘어쩌면…’ 가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버켓 리스트 1번과 2번에 배정했다. 둘 중에 앙코르 와트는 상대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계산했다. 마추 픽추는 지구 반대편에 있으니까.
나이 마흔 초반에 미국으로 터전을 옮기게 되었다. 이제는 마추 픽추가 가까워졌고 앙코르 와트는 멀어졌다. 1번과 2번을 바꾸었다.
인터넷 시대가 되고 관련 정보 모으기가 수월해지면서 ‘마추 픽추, 갈 수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고산병의 위험을 알리거나 고산병 때문에 고생한 글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자꾸 나이가 들어가는데 그런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추 픽추의 순위를 1번에서 내려오게 했다. 그러면 앙코르 와트가 다시 1번이 되어야 하는데 1번으로 올려놓는 것도 망설여졌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모두 돌아가신 지금은 고국 방문 일정을 잡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성수기/비성수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왕복 항공료만 200만 원은 족히 잡아야 한다. 게다가 고국 방문이라는 게 비행기만 탄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그러니 본국을 거쳐서 가게 되는 앙코르 와트를 가보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결국 1번으로 올려놓지 못하고 슬며시 뒤로 미뤄두었다.
페친 중에 지방에서 출판, 편집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경남 진주에서 앙코르 와트에 관한 책이 출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앙코르 와트에 관한 관심에 다시 불이 붙었다. ‘흠… 직접 가보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정도의 책이라면 현장에 가본 것으로 쳐도 될 것 같은데?...’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른 후 인터넷의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2008년부터 캄보디아에서 앙코르 유적을 연구하고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캄보디아를 비롯하여 동남아시아의 유적과 문화유산을 조사, 연구하고 있습니다.’라는 자기소개를 한 앙코르 유적 연구자의 글을 만나게 되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반가울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