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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시본(wishbone)

미국 들여다보기 - 18

  통닭을 먹다 보면 가슴 쪽에 Y자 모양의 뼈가 나온다. 조류의 가슴뼈 앞에 있는 Y자 모양의 이 뼈가 바로 위시본(wishbone)이다. 한자로는 창사골(暢思骨) 또는 차골(叉骨)이라고 하는가 보다. 이 뼈의 양쪽 끝을 각각 한 사람씩 잡은 후 잡아당긴 후 긴 쪽을 가진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는 뼈.



  잠시 다른 이야기. 지금은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전에는 있었다. 아카시아가 주로 쓰였던 것 같은데, 나뭇가지에 붙은 잎은 하나 씩 떼어내면서 '나를 사랑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를 반복하다가 마지막 남은 하나의 잎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보는 그런 일. 꽃잎을 하나 씩 떼어내면서 하기도 했다. 도시에서는 이런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저 앞의 육교 계단을 오를 때, 계단의 수가 홀수면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거야.'하고 생각해보는 일.


  이런 것들은 무엇인가 추측하거나 또는 어떤 결정을 할 때 자신의 의사가 개입되는 것을 피하려 할 때 사용된다. 자신의 의사가 개입되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해 자신이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여기 두 회사원이 있다. 그 회사원 중에 한 사람은 이번 일요일에 출근해야 하는 일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일요일에 출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출근해야 한다. 자, 어쩐다? 가위 바위 보를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가위 바위 보를 하게 되면 패자는 언짢다. 가위 바위 보는 심리와 전략이 작용되기 때문에 '졌다', '패배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동전 던지기는 조금 나으려나? 가위 바위 보보다는 이겼다, 졌다는 생각은 덜 들겠다.


  동전 던지기처럼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할 때 사용했던 것이 위시본이다. 두 사람이 위시본의 기다란 쪽을 한쪽씩 잡은 후 동시에 바깥쪽으로 잡아당기면 가운데 작은 부분이 어느 한쪽엔가는 붙어가게 된다. 이때 긴 쪽을 가진 사람, 그 사람이 자신의 바람(wish)을 이룬 것이다.



  자신의 바람(wish)을 확인해보는 닭의 가슴에 있는 뼈(bone), 이것이 바로 위시본(wishbone). 어떤 선택을 할 때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울 수 없게 만듦으로써 바라는 것을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 패배감을 주지 않게 한다는 것이 위시본의 초점. 만약 위시본의 짧은 쪽을 잡았더라도 그것은 운이 없어서 일뿐이지 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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