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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영어를 배우다

미국 들여다보기 (44)

운이 좋은 편이었다. 미국 생활 초기에 여러 곳에서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제2언어로서의 영어) 과정의 영어를 배울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맨 처음은 출석하던 교회에서 만든 작은 그룹에서였다. 작은 규모의 이민교회가 대부분 그렇듯이 미국 교회가 예배를 마친 후 비워진 그 장소에서 우리말 예배를 드렸다. 그 미국 교회를 통해 영어 선생님을 섭외해서 교인 중에 영어를 좀 더 보완하려는 가정과 이민 초기의 가정을 모아 영어반을 열었다. 그때 남태평양의 섬나라 통가 출신으로 기억되는 남자 선생님으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통가는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미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 따위를 배울 때 알게 되는 나라이다.


미국에 대해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시절에는 ‘미국의 흑인은 모두가 아프리카 출신 노예의 후손’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남태평양 출신의 그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면서 머리카락이 곱슬곱슬하고 피부가 검다고 해서 모두가 아프리카 출신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샐러드 보울(Salad Bowl)과 같은 곳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다음은 신학교 부설 ESL과정에서 영어를 배웠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간단한 시험을 보아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끼리 모아 세 개 반으로 운영했다. 상급반에 속해서 영어를 배웠지만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어느 월요일 수업 시작 전에 주말에 뭘 하면서 지내는지를 주제로 자유 발언을 하고 있었다. 미혼의 청년이 특별한 일 없이 주말을 지냈다는 말을 하자 그의 큰 누나 정도 나이의 정 많고 사려 깊은 여성이 말을 받았다. “Why don’t you make a girlfriend?” 그 말을 들은 우리는 모두 머릿속으로 ‘아 그러면 여자친구라도 만들지 그래요?’라고 자동 번역했고, 퍽 괜찮은 권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활달하고 활기 넘치는 60대 초반의 여선생님은 웃으면서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선생님이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의아해했다. 선생님이 놀란 표정을 유지하면서 말했다. “Make a girlfriend?”(여자친구를 만든다고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그런데요? make a girlfriend가 뭐 어때서요?’라고 생각하면서 의아한 표정을 유지했는데 선생님의 다음 말씀을 들으면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여자친구를 만든다고요? 여자친구가 팔 갖다 붙이고 머리 갖다 붙이고 해서 만드는(make) 것이에요?” 우리는 모두 ‘아하…’하는 탄성과 함께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지… 여자친구는 제작(make)하는 것이 아니지…’


몇 년 전에 방송된 TV극에서 한국의 국제학교 초등학생 교실 수업 장면이 있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한인 선생님이 영어로 질문을 했고 교실 안의 한인 학생 여럿이 자신에게 답을 말할 기회를 달라고 손을 번쩍 들고서는 “Teacher.” “Teacher.”하고 불렀다. 그 장면을 보면서 ESL에서 합반으로 수업하던 때가 생각났다. 가끔씩은 등급이 다른 반과 함께 수업을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 퍽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업 중에 질문을 하는 등 뭔가 선생님께 말할 것이 있을 때 초급반 사람들은 손을 번쩍 든 후 이렇게 말했다. “Teacher.”


아닌 게 아니라 우리 모두는 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 질문할 것이 있으면 손을 들고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초급반 학생들이 “선생님.”하고 부를 때 ‘선생님’의 영어인 ‘teacher’라고 부르는 것이 이해가 간다. 단순 기계식의 번역인 셈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주목을 끌기 위해 “Teacher.”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말로 선생님을 부를 때의 “선생님”이 아니라 느닷없이 “교사” 또는 “교사님”이라고 그의 직업을 불러대는 격이다.


만나 본 영어 선생님 중에는 긴 세월을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하신 후 은퇴하신 남자 선생님이 있었다. 상급반 학생들의 대부분은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글은 어느 정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문법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가끔은 문법에 관한 질문을 하기도 했는데 그 선생님은 복잡한 문법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관한 문장을 몇 번 발음을 해본 후 답을 말해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 영어는 언어이고, 언어이니까 현실에서 어떻게 말하는지(usage)가 중요하지…’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말을 배우는 어떤 미국 사람이 “꼼꼼이가 맞아요, 꼼꼼히가 맞아요?”라고 물어왔다고 해보자. 이럴 때 “아, 그거요? 뒤에 하다를 붙여보아 어색하지 않으면 히가 맞고 어색하면 이가 맞아요. 꼼꼼하다. 흠… 괜찮군요. 어색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꼼꼼히가 맞겠네요.”라는 긴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냥 “꼼꼼이. 꼼꼼히. 꼼꼼이. 꼼꼼히.”를 몇 번 발음해 본 후 “음… 꼼꼼히가 맞군요.”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물론 이런 ‘하다’를 붙여 구별하는 방법에도 예외가 있다. ‘깨끗하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으니까 ‘깨끗히’가 맞을 것 같지만 ‘깨끗이’가 맞다. 사과나 상추를 씻을 때 ‘깨끗히’ 씻는지 ‘깨끗이’ 씻는지 발음해 보시길.


이민 초기 1년 사이에 배운 영어로 20년 가까운 세월을 잘 버티고 있다. 그때 영어를 가르쳐준 모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미국 이민자에게 영어는 매우 중요한 생존 도구이기 때문에 도착 초기에 잘 배워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실천할 수 있었으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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