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리무진, 경찰 호위 그리고 장례식

미국 들여다보기 - 21

  리무진(Limousine)이라는 차가 있다. 줄여서 리모(Limo)라고 한다. 생긴 것은 세단인데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가 무척 길어서 여러 사람이 탈 수 있게 만든 차이다. 보통 업체에서 렌트하여 사용하는데, 결혼식이나 졸업파티 같은 때에 쓰인다. 영화 같은 데서 볼 수 있다. 일반 자동차는 하루 단위로 렌트비가 계산되지만 리무진은 시간 단위로 렌트비가 계산된다. 렌트비가 만만찮다는 얘기다. 게다가 리무진 운전을 위한 전문기사 비용도 들어야 하니 한 번 타는 게 부담이 된다.


  그런데 미국 서민도 이 리무진을 타는 때가 있다. 묘지에 갈 때이다. 우리는 장례식장을 떠나 묘지로 향할 때 관을 운반하기 위해 장례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버스 뒤편에 있는 문을 통해 관을 집어넣은 후 유가족 등은 버스 좌석에 앉아서 묘지로 간다. 미국은 장례버스가 없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차로 이동을 하니까 조문객들은 각자 자기 차로 묘지로 간다. 이때 망자의 관을 운반할 때에 사용하는 것이 리무진이다. 이때의 리무진은 우리가 흔히 보아온 그런 리무진이 아니고 뒤편에 관을 실을 수 있도록 만든 리무진이다. 유가족도 별도의 일반 리무진을 이용한다. 커다란 슬픔을 가슴에 담은 사람들이 한 차를 타고가면서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가진 사람이 직접 운전해서 묘지로 향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이 리무진에 망자와 유가족을 싣고 묘지로 가는 차량 행렬이 장관이다. 그다지 크지 않은 동네에도 망자를 추모하기 위해 모이는 조문객의 차량이 수십대는 된다. 그러니 상상해보자. 망자를 실은 리무진 뒤로 수십대의 조문객 차량이 따르는 모습을 말이다. 이 기나긴 행렬이 움직이려면 뭔가 특별한 조치를 해야 한다. 뒤따르던 조문객이 운전하는 자동차가 교통신호등 빨간불에 걸려서 멈춰 선다면 어찌 될까? 다시 초록불이 들어오면 앞서가는 행렬의 뒤쪽에 붙기 위해서는 다소 위험한 운전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교통신호 몇 번 받다 보면 조문객 차량 행렬이 서너 조각으로 나뉘어서 묘지를 향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모든 조문객이 묘소 가는 길을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신호대기가 풀린 후 앞 행렬의 뒤쪽을 금방 따라붙을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조문객의 운전실력이 좋을까?


  이럴 때 경찰이 도와준다. 미리 경찰서에 요청하면 경찰들이 장의 차량 행렬이 원만한 흐름을 타고 묘지로 갈 수 있도록 교통을 통제해준다. 먼저 조문객 차량은 대시보드 위에 조문차량임을 표시하는 종이를 얹거나 유리창에 조문객 차량임을 표시하는 작은 깃발을 단 후 전조등을 켜고 깜빡이를 켠다. 조문객 차량임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장의차량 행렬을 경찰차 몇 대와 오토바이 몇 대가 동원되어 장의차량 행렬이 묘지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번의 멈춤도 없이 갈 수 있게 한다. 즉 여러 경찰이 순차적으로 장의차량 행렬의 전방에 등장하여, 교통신호등이 어떤 색깔이든 상관없이 수신호로 모든 차의 진행을 막고 장의차량 행렬만이 나아가도록 통제한다.



  이렇게 서민도 살아서 타보지 못한 리무진을 사망 후에는 타보고, 살아서 받아보지 못한 경찰의 호위를 사망 후에는 받아보는 것이다. 리무진은 업체에서 빌리니까 돈을 내지만 경찰 호위는 돈이 들지 않는다. 원활한 교통 흐름을 유지하는 것은 그들 원래의 업무이니까. 그런데 사실은 감사의 인사를 금전으로 한다고 한다. 동원된 경찰들의 ‘라면값’ 명목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경찰서에 ‘기부’(donation)하는 형식으로 한다고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일회용품의 귀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