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28
변호사는 타인의 법적인 업무를 대행 또는 지원해주고 보수를 받는 직업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보수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 요컨대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달라고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많이 들어본 불만이다. 미국에 사는 미국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서도 많이 들어본 불만이다. 사실 변호사 선임에 따른 비용은 몹시 비싸다. 이 비싼 비용을 들이지 않으려면 법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변호사 보수에 대해 가장 많이 들어본 불만은 ‘그깟 종이 몇 장에 그렇게나 많은 돈을 받아?’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해 마시라. ‘그깟 종이 몇 장’때문에 돈을 받는 게 아니라 그깟 종이 몇 장에 적힌 ‘내용’때문에 돈을 받는 것이다.
그깟 종이 몇 장에 ‘내용’을 적기 위해서 변호사는 고객을 만나서 얘기를 듣는다. 고객은 자신의 답답한 사정을 얘기하는 것이지만, 변호사는 고객이 하는 말을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옛날 얘기 듣듯이 그렇게 듣는 게 아니다. 고객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털어놓는 말 속에서 법적으로 의미가 있는 말들을 추려내서 법에 규정된 요건에 부합하게 재구성한다. 그러면서 소송 등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의 공격과 방어방법을 생각해가면서 듣는다. 고객과 면담하는 이 과정에서부터 이미 전문가로서의 지식과 경험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변호사가 ‘그깟 종이 몇 장’에 뭘 적는 것은 일기를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거기에는 변호사의 지식과 경험이 담겨있다. 타인의 지식과 경험을 이용했으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적재산권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의사의 처방전을 생각해보자. 의사가 처방전을 쓸 때에는 자신이 보고 살핀 환자의 상태와 각종 검사 결과를 합한 후, 의사 자신의 의학지식과 진료 경험을 총동원해서 처방전을 쓴다. 그러니 처방전은 ‘그냥 종이 한 장’이 아닌 것이다. 환자에 대해 의사가 가진 모든 것이 담겨있는 것이다. 변호사도 다르지 않다.
변호사는 자신의 시간을 고객에게 내준다. 고객을 면담하고, 검토하고, 관련된 자료를 찾고 그리고 글을 적는 시간들. 그리고 법정에서 고객을 위해 다투는 시간들. 남의 시간을 썼으면 대가를 치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회사가 직원을 고용해서 일을 시키면 임금을 준다. 그 직원이 가진 기능을 사용했고 그 직원의 시간을 썼기 때문이다. 변호사도 마찬가지이다. 변호사는 매우 전문적인 직원이면서 대가를 많이 치르게 되는 직원과 같다. 이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르지 않다.
법률 서비스를 사는 측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변호사 보수는 비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건을 들여다보는 시간에 따라 비용이 청구되는데, 한 시간당 수 백 불 청구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삼성전자가 특허권 관련 소송으로 지출하는 변호사 비용이 얼마나 될 것인지 상상이나 할 수 있으시려나? 그리고 BBK에 투자한 다스의 투자금 140억 원을 회수하기 위해 미국에서 벌어진 소송에서 삼성그룹이 소송비용을 대신 내준 혐의가 있다는 그 사건, 미국 로펌에 건네진 소송비용이 40억 원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거나 굉장한 금액이다.
미국에서는 소송 전략의 하나로 소송을 하염없이 늘이는 것이 있다. 물론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기술적으로 늘인다. 예를 들면 소송 관련성이 높지 않은 자료를 잔뜩 제출하는 것이다. 변호사가 제출된 자료를 검토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들이도록 하여 변호사 비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소송을 늘임으로써 금전적 여유가 없는 상대방이 자신의 변호사 보수를 감당할 수 없게 하는 전략인 것이다. 일반인이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해서 이기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이다. 치사하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변호사는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변호사는 고객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오해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