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 29
오래된 미국 농담 하나. 어떤 파티에서 의사와 변호사가 만났다. 변호사가 자신의 병세를 설명하고 나서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의사가 말했다. “저라면 당장 의사를 찾아가시라고 권유하겠네요.” 그런 후 의사가 자신의 법적 문제를 말하고서 조언을 청했다. 의사의 법적 문제에 대해 변호사는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의사는 변호사가 보낸 청구서를 받았다. 지난밤 파티에서 있었던 상담에 대한 상담료 청구서.
한국에서 전에는 변호사가 상담을 하는 것은 무료로 했었고, 사람들도 그것을 당연시했었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무슨 서류를 써준 것도 아니고 그냥 얘기만 나누었는데’ 무슨 돈을 받느냐는 생각이었는데, 지적재산권에 관한 인식이 높지 않았던 시절의 얘기다. 변호사는 그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재산인데 그런 것에 관한 인식이 없었던 시절에는 상담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변호사의 입장에서도 상담은 거의 사건 수임으로 연결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수임하게 될 사건의 상담료를 별도로 받기보다는 사건 전체의 보수에 상담료가 포함되는 것으로 생각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변호사가 상담할 때 상담료를 청구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상당한 저항이 있었는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미국도 변호사 상담에는 상담료를 지불한다. 물론 첫 상담을 무료로 하는 변호사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건 수임을 위한 변호사 측의 영업상 정책인 것이지, 원래 상담이 무료이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상담료를 지불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상담했다고 해서 사건을 맡기는 것도 아니다. 고객은 쇼핑하듯이 여러 변호사를 만나 본 후 자신에게 가장 맞는 변호사를 선택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좋은 물건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거의 20년 전인 2001년 즈음에 미국에서 변호사를 만나서 상담한 적이 있다. 미국인 한 사람, 한인 한 사람을 각각 만났었는데 상담료가 한 시간에 100달러였다. 당시 변호사의 일반적인 시세였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한 시간에 100달러가 들어간다면 1분에 1.67달러이다. 1분에 1.67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면 신변 잡담할 틈이 없다. 얘기 중에 허튼소리나 농담을 해도 그 모두가 비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객은 자신이 처해진 상황을 조리 있게 설명하여 변호사가 쟁점을 잘 파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고객이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고 명확하게 알려줘야 변호사가 짧은 시간 안에 쟁점을 잘 정리하여 요점을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질문이 부실하면 변호사는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고객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고객이 질문하고 변호사가 답을 하는 구조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변호사가 고객의 질문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을 하게 된다면 고객은 변호사가 질문하는 그 시간도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이 아까우면 질문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질문을 잘해야 상대방도 답을 잘한다. 그러니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낳는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