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 32
오래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기를 돌보던 엄마가 잠시 잠깐 한눈팔았는데, 기어 다니는 아기가 집안 수영장에 빠져 익사한 사고가 있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아기 엄마가 뭔가 중얼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넋이 나간 아기 엄마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이고,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어…”
경찰이 주위의 한인에게 ‘저 사람 지금 뭐라는 거예요?’하고 물어본 모양이고, 이때 누군가가 'I killed… I killed…'라고 통역했나 보다. 경찰은 그 즉시 아기 엄마를 체포했다. 살인죄. 그것도 고의가 있는 1급 살인죄.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고 자신의 범죄를 자백한 피의자.
우리는 안다. 이 엄마가 말한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어…”라는 말이 자신이 그 아기를 수영장에 빠뜨려 살해했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이 말은 살인이라는 범죄의 고백이 아니라 자신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라는 것을. 그러니 ‘I killed…”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뜻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렇게 통역하는 바람에 일이 꼬여버렸다. 재판 과정에서 이 엄마가 했던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어…”라는 말의 진의를 재판부에 설득하기 위한 노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 지역 한인사회가 나서서 그게 그런 뜻이 아니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법원에 넣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서 통역이나 번역의 오류는 크게 문제 되지 않을 수 있다. 때로는 그게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법이라는 동네에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법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고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법과 관계되는 일에서는 즉문 즉답하듯이 통번역하다가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법이다. 적확한 표현이 요구되는 게 법이기 때문에 법과 관계되는 통역이나 번역은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에서 그런 말을 한다. “너 이제 죽었어.”, “너 죽고 싶어?”, “너 그러다가 죽는다.”, “어쭈? 죽을래?”, “그렇게 까불다가 죽는 수가 있어.” 우리는 이런 말들에서 살기나 살의를 느끼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한인 고등학생이 다른 한인 고등학생에게 조금 심한 장난을 했고 화가 난 학생이 우리말로 앞에 예를 든 것 중에서 하나를 말했다고 하자. 그걸 옆에 있던 미국 학생이 “쟤 뭐라니?”라고 물어봤을 때 “I will kill you.”라고 통역하면 큰일 난다는 얘기다. 그렇게 통역했다가는 경찰이 출동할 수 있다. 교장실에 불려 가는 정도만 되어도 다행인 거고. 법과 관련된 통역과 번역은 영어 좀 한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