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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택트(eye contact) 습득하기

이를 악물고 배우다

  학교 일진이 나오는 영화에는 항상 나오는 대사가 있다.

"눈 깔아. 안 깔아?"

눈을 깐다는 것, 즉 시선을 상대방의 눈 아래쪽에 두는 것은 복종을 의미한다.

그래서 윗사람이 말씀하실 때 우리는 눈을 밑으로 깐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특히 꾸지람을 할 때에 눈을 마주치면 반항으로 취급한다.

"어딜 감히 눈을 똑바로 뜨고!"


  그러나 

미국에서는 대화를 할 때 반드시 상대방의 눈을 쳐다봐야 한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얘기하면 정직하지 못한 사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사람으로 본다.

눈을 마주치는 아이 콘택트(eye contact)는 대화의 기본 중 기본이다.


  미국 초등학교 선생님이 한국에서 막 도착한 학생을 만나면 많이 난감해하던 때가 있었다.

영어를 안되어서 외톨이로 지내는 꼬마가 안쓰러워서 뭔가 다정하게 말을 걸면, 도대체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다른 곳만 쳐다보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를 알기 전까지는 몹시 불쾌해한다.

그리고 우리 문화를 알게 되면 놀란다.

'아니 세상에,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화를 하다니...'하고 말이다.

물론 우리도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심지어 미국 학교에서는 꾸지람을 들을 때에도 교사의 눈을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

만약 시선을 피하거나 딴 곳에 시선을 두면, 교사는 자기를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교사는 교사를 무시한 그 학생 행동의 엄중한 처벌을 위해 그를 교장에게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꾸지람을 들을 때에도 눈을 똑바로 마주쳐야 하다니, 우리에게는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 도착 몇 년 후 미국 회사에 취업을 했다.

다인종이 근무하는 회사이지만 내가 배치된 곳에는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하는 일은 거의 막노동 수준인데 이 다섯 한인 중에 매니저나 슈퍼바이저가 설명을 하거나 지시를 내릴 때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듣는 것은 나 하나였다.

다른 한인들은 바닥을 보거나, 다른 한국인을 바라보거나, 상사의 어깨너머나 가슴께에 시선을 두었다.

어떤 때에는 그가 말하다 말고

"이봐 미스터 킴, 날 좀 보라구."

하고 다른 한인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다.


  내 신입사원 시절인 1985년, 과장님이나 부장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지시를 받거나 내 의견을 말한다?

천만에 만만에.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딜 감히...

그때 그 미국 직장의 한인 다섯 명은 얼추 비슷한 나이였고 모두 그런 세월을 지낸 사람들이었기에 우리끼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그  다섯 한인 중에서 나는 어떻게 미국인 직장상사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을까?

사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나 역시 연장자나 직장상사 앞에서 시선을 깔았었다.

그게 구두지시에 집중하는 모습이었으니까.

그랬기에 내 머리가 그의 어깨에도 닿지 못할 정도로 덩치가 큰 미국인 직장상사와 눈을 마주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스스로가 엄청난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놈의 아이 콘택트(eye contact) 때문에 다 이해되지도 않는 영어 지시를 들으며 이를 악물고 직장상사의 눈을 쳐다보았다.

정말이다.

'이를 악물고' 직장상사의 눈을 쳐다보았다.


농담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이를 악물고' 직장상사의 눈을 쳐다보았다.

이를 악물지 않으면 시선이 자꾸 다른 곳으로 가기 때문이었다.


  첫 미국 직장에서 '이를 악물고' 습득한 아이 콘택트, 그 후 미국 생활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얘기하는 사람을 어쩌다 만나면

'미국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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