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떠난다는 결심 이후

미국 이민 선배가 미국 이민 후배에게 - 1

  네가 미국으로 출발할 날이 이제 두 달 남짓 남았구나.


  처자식 데리고 태평양 건너기로 결심했을 때 내 나이 마흔 초반이었다. 비행기 타기 며칠 전 어머니께 인사드리러 갔다가 나서던 날은 18년이 났지만 내가 눈감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게다.


  이제 출발하겠노라고 어머니께 큰절을 올리며 거실 바닥에 머리를 가까이했을 때 금방 일어나지 못하고 시간을 조금 지체했다. 안구에 고인 물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는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시선을 45도 위로 향하고 일부러 딴 곳을 보면서 문을 나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나가서 차 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께서는 아파트 그 높은 곳에서 창을 열고 내다보고 계셨다. 내가 돌아보자 어머니께서는 손을 흔드셨다. 나도 손을 흔들어드리고 다시 돌아서서 차를 향해 걸었다. 아내와 두 아이가 차에 오르고 마지막으로 내가 차에 오르기 전에 어머니 계신 곳을 보았을 때 어머니께서 다시 손을 흔드셨다. 나도 손을 흔들어드렸다. 그리고 차를 출발한 후 어머니 보이시는 아파트 마지막 모퉁이에서 다시 어머니를 보았는데 손을 흔들어주셨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하고 아파트 단지 밖을 나와 큰길로 나왔는데 500미터도 못 가서 길가에 차를 세웠다.

뜨거운 눈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 안의 그 누구도 왜 차를 세웠는지 묻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눈물이 흐르게 둔 후 손등으로 눈물을 닦을 수 있을 정도로 눈물이 잦아들었을 때 자동차를 출발했다.


  미국으로 출발하는 날, 인천공항.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가 마침내 기수를 치켜들고 땅을 박찰 때 나는 눈물을 흘렸다. ’아… 어머니 생전에 다시 찾아 뵐 수는 있는 것일까… 이생에서 다시는 못 뵙게 되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 이런 불효자식이 다 있나…’


  그때 40대인 나는 그렇게 떠났다.

지금 30대인 너도 비슷할지 모른다.

이민자의 숙명이다.
많은 것을 남겨두고 떠난다는 것과
많은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


  네가 미국에 도착하면 닥치게 될 일들을

먼저 온 사람으로서 미리 얘기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시작한다.

내 경험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다소 도움은 되리라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독립성이 강한 미국의 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